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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189-2:김세근(1806부임-1810이임)
작성자장병창 @ 2020.09.12 06:40:54

  예천고을원 189-2 : 김세근(1806부임-1810이임) : 명봉사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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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근 [記事] : 정조실록 30권/ 정조 14년(1790 경술 / 청 건륭(乾隆) 55년) 5월 22일(임인) 4번째 기사/ 좌의정 채제공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상소를 하다/ 좌의정 채제공이 상소하기를, 󰡒신이 의정부에 있은 지 3년에 온갖 후회가 겹쳐 쌓였습니다. 이를 요약하여 세어보면 그 죄가 세 가지 있습니다. 전하를 보좌하는 책임을 염치를 무릅쓰고 받는 이런 도리는 단연코 없는 것인데도 망령되이 스스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의의에 따라 구물구물 조정에 나아가고 태연하게 벼슬살이를 하였으니, 이것이 신의 첫째 죄입니다. 신은 임명받은 이래 우러러 임금을 믿고 그 덕으로 생을 부지해왔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우익도 없는 외톨이 신세로서 처신에 있어서는 자기 격식을 고치지 않고, 나쁜 것을 미워함에는 분수를 낮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겨울 나무잎이 서리를 맞는 것을 당장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몸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주제에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의 둘째 죄입니다. 신이 요즈음 혹은 차자로, 혹은 주달로 분수에 맞지 않는 직책을 해임해줄 것을 청해왔습니다.

 

  신이 언제인들 기회를 엿보지 않았겠습니까마는 잘하지 못한 일은 하루속히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째 죄입니다. 신이 이 세가지 죄가 있는만큼 조진정의 상소는 사리로 보아 당연한 것입니다. 잠영 세족(簪纓世族)으로서 품행이 단정한 권평(權坪)이나, 인품과 학문으로 우뚝 뛰어난 최현중(崔顯重)에 대하여 문벌이 미천하다느니, 용렬하다느니 하여 신과 친근한 사람 중에 신의 해독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처럼 눌러 뭉개고 잡아 꺾어서 한 사람도 완전한 자가 없다보니, 죽은 아내의 삼종오라비를 인척으로 몰았으며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를 압객(狎客)으로 지목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신이 인재를 추천함으로 임금을 섬기려고 애쓰던 마음은 끝내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오대익(吳大益)의 일로 말하면 신이 주달할 때 어찌 일찍이 오대익이 모면하기 어려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한 적이 있으며, 법을 집행하는 대간의 규탄에 대해 옳지 않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조정이 만약 향안 등록을 불태워버리고자 한다면 예전(禮錢)으로 바친 돈을 일일이 추심하여 항안에 참록된 사람들에게 되돌려준 다음에 새 향안을 불태워버리는 것이 사리에 타당한 일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민고(民庫)의 빚을 갚거나 공적으로 지출한 것, 그리고 각방(各坊)의 부역을 막고 성지(城池)와 관청집을 보수하는 데에 지출한 수만 냥을 모두 따지지 말 것을 허락하자고 하였습니다. 가령 이미 4, 5백 냥을 바친 사람에 대하여 다만 1백 냥이나 또는 1백 냥도 안 되는 돈을 주면서 󰡐 공적으로 지출한 것이라 징수할 곳이 없어서 원액대로 보상할 수 없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공적으로 지출했다는 것은 곧 관청에서 쓴 것인데, 관청에서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 또한 매우 구차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미 등록해 놓고 이내 도로 불태워버린다면 과연 기분좋게 심복하겠습니까. 신이 우의정과 의견을 달리했던 것은 오로지 국가를 위하는 옛사람의 의리에서 나온 것으로, 작은 혐의나 사소한 절차를 감히 돌아보지 못한 것은 실로 이 때문입니다. 정성이 믿음을 주지 못하여 남의 의혹을 사게 되었으니 자신을 반성할 뿐입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신이 구상(具庠)을 논박한 상소 중의 말들은 그저 손가는 대로 써서 대략 옛사람들의 글쓰는 수법을 본받은 것에 불과하였는데, 이것이 남의 지적을 받는 대상에 들어가 신하로서 차마 들을 수 없는 지목을 가하는데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세상 인심이 험악하기가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까. 유생(儒生)을 잡아가둔 일에 있어서는 모화관으로 거둥하시던 날 신은 병으로 반열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돈의문(敦義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웃옷을 걸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 팔을 끼고 교자 곁에 서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채로 얼굴을 절반쯤 가렸고, 한 사람은 입에 담뱃대를 가로 물고 있었습니다. 대동한 권두(權頭)가 담뱃대를 빼라고 호령하자 담뱃대를 가로 물고 있던 자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하기를 󰡐 내가 무엇 때문에 저 자를 보고 담뱃대를 빼겠는가.󰡑 하였습니다. 이에 권두는 분개함을 참지 못하고 따르던 하인들을 시켜 그 두 사람을 잡아 가두게 하였는데, 신은 잠자코 있었을 뿐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전옥서(典獄署)에서 죄수를 보고해왔는데, 그들이 곧 김관순(金觀淳)과 김병성(金炳星)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였으므로 아침이 되면 처결하여 석방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밤 3경쯤 되었을 때 옥리(獄吏)가 급히 고하기를 󰡐 학당의 유생 수십 명이 지금 옥문을 부수려고 하면서 큰소리로 공갈하기를 「만약 두 사람을 석방하지 않으면 우리들이 전옥서의 관리를 죽이겠다.」고 한다.󰡑 하였습니다. 신은 그만 놀라서 두 사람을 즉시 형조로 넘겼는데, 다음날 아침에 들으니, 김병성은 곧 돈령부 참봉 김세근(金世根)의 아들이고 김관순은 곧 동부 봉사(東部奉事) 김이의(金履毅)의 아들이었는데, 담뱃대를 물고 패악한 말을 한 자는 바로 김관순이었습니다. 또 들으니, 학당 유생들이 통문을 돌려 아주 심하게 신을 헐뜯고 욕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신이 바야흐로 사유를 갖추어 초기(草記)를 올려 현재 갇힌 자를 엄격히 다스릴 것을 청하려 하고 있을 때 김세근이 신과 친한 사람을 찾아와 보고 매우 진지하게 애걸하였는데 그의 말은 매우 식견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김병성은 애당초 입을 열지 않은 채 부채로 얼굴을 가렸을 뿐이었고 오직 김관순과 함께 팔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즉시 석방하였습니다. 듣건대, 김세근은 돈령부의 수직하던 곳에서 자기 아들을 여러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볼기를 쳤다고 하니 이는 부형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이를 만합니다. 사흘이 지난 뒤에 김관순의 늙은 할아비는 신과 친근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 집에 패역한 손자를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신의 생각에, 근래 사대부들이 자손을 가르침에 전혀 예법으로 아니하여 패악한 짓을 하도록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니 하나의 김관순을 다스리고 다스리지 않는 것이 교화에 관계가 없다면 차라리 그 할아비로 하여금 스스로 다스리게 하는 것이 나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신은 그래서 김관순을 또 석방하였는데, 대간의 상소에 󰡐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 없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대체로 욕보일 수 없다는 것은 선비로서 공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 말입니다. 대낮 큰 길가에서 홑옷바람으로 담배를 피워물고 대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에 대하여 누구도 감히 어찌할 수 없다면, 앞으로 선비라는 이름을 걸고 온갖 패려한 짓으로 용서하기 어려운 죄과를 저질러도 조정에 있는 자로서 그것을 보고도 말이 없어야 곧 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에서 논한 일은 오히려 작은 일입니다. 상소문 서두에 운운한 말에 있어서는 그에 관해 무신년에 상께서 명백히 하유하신 뒤로 조정 신하로서는 감히 믿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도 그는 거리낌없이 쉽사리 말하였으니, 신이 비난을 받는 것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으나 임금의 말에 손상을 줄까 두렵습니다. 슬피 눈물을 흘리는 외에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신은 마음이 너무도 슬프고 처신이 너무도 불안하여 강교(江郊)로 달려나와 밤낮으로 벌책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하로부터 받은 신부(信符)를 그대로 계속 받들고 있는 것은 더욱 사적인 분의로 보아 감히 할 수 없으므로 10일 동안 재계 중이신 전하에게 날마다 신부를 바침으로써 전하를 성가시게 하였으니, 신의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승선(承宣)을 내보내 함께 오도록 하신 일은 특별한 예우입니다. 신처럼 죄를 진 자가 어찌 감히 이러한 예우를 감당하겠습니까. 신이 현재 맡고 있는 정승의 직책을 빨리 교체하고 이어 신의 전후 죄과를 다스리기 바랍니다.󰡓하니, 비답하기를, 󰡒재계를 마치고 조회를 기다려 별도의 하유를 내리자마자 경의 사직소가 뒤따라 이르렀다. 이토록 벼슬을 사양하고 혐의를 피하니 경을 위하여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경은 생각해 보라. 서로 뜻이 맞는 것이 이와 같고 경에게 위임한 것이 이와 같은데, 한 때의 생각지 않은 언짢은 말을 가지고 도리어 사물은 각각의 사물 자체로 놔둔다는 원칙을 소홀히 하니, 조정에 나아가면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던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경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니, 정승자리에 있은 지 3년 동안 거의 한달도 조정에 편안하게 있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만약 남의 비방 중상에 따라 하나하나 대꾸하려 한다면 비록 경의 튼튼한 정력으로도 그에 수응해낼 길이 없을 것이며 취향을 달리하는 자들의 배격하는 교활한 계책을 도와주는 일이 될 것이다. 경에게 있어 무익할 뿐 아니라 여태까지 애써 보살펴오던 나의 노력이 여지없이 허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되면 경은 결국 나를 저버림을 면치 못할 것이니 경이 어찌 차마 이를 하겠는가. 상소문 중에 나열한 것은 어찌 경의 말을 듣고서야 자세히 알 일이겠는가. 유생들의 일에 대해서는 조정의 기강을 존중하는 원칙에서 특별히 조사해 규명하려 하였는데, 경의 말을 듣고 그 넓은 도량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의 할아비와 아비가 이미 매를 때려 가르치고 편지를 보내 애걸하였다고 하니 지금 다시 제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수십 명의 학당 유생이 밤중에 떼를 지어 옥문 밖에 가서 그와 같은 해괴한 짓을 하여 선비들에게 수치를 준 것이야 어찌 작은 문제이겠는가. 이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모든 유생의 수치를 어떻게 씻겠으며 앞으로 대신이 어떻게 대신의 일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묘당으로 하여금 처결할 만한 죄명으로 사리를 따져 품계하게 하라. 이는 경을 위하는 일만이 아니라, 조정을 위해서이며 성균관을 위해서이다. 대개 야금(夜禁)은 법전에만 실려 있을 뿐 아니라 본디 한 벌의 단서(丹書)가 있다. 이 금령은 일찍이 그냥 지나쳐 넘긴 일이 없어 직제학(直提學) 이하는 으레 단속하는 대상에 들어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밤에 벼슬도 없는 무리들이 이와 같이 무엄하게 싸다니는 것에 대해 그 사실이 이미 위에까지 알려진 데야 어찌 그것을 소홀히 볼 수 있겠는가. 또한 묘당으로 하여금 그날 밤 순찰한 영문(營門)을 조사하여 일체 초기를 제출하고 제재를 가하게 하겠다. 이밖의 여러 문제는 한번의 비답으로 다할 일이 아니며 더구나 결심하고 있는 것은 경을 기어이 출사하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니 경은 모름지기 이 뜻을 이해하고 당일로 입성하라.󰡓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그날 전옥서에 남아 있던 관리들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그날 인정종(人定鍾)이 있은 후 학당 유생 10여 명이 본서의 대문 밖에 와서 말하기를 󰡐 갇혀 있는 유생은 곧 중부학당의 장의(掌議)이며 또 소청(疏廳)의 담당자이다. 너의 관원에게 말하고 대신에게 말을 전달하여 석방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하기에, 입직관(入直官)에게 말하였더니, 입직관의 말이 󰡐 대신이 가둔 사람이라 감히 멋대로 석방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학당 유생들에게 말하였으나 학당 유생들은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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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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