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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02-1 : 김기현(1841부임-1844이임) : 명봉사 암자 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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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金箕絢, 1799-?)은 1841년(헌종 7)에 권용만 군수 후임으로 부임하여 1844년(헌종 10)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홍천 사람, 자는 성소(聖素), 본관은 광산, 사옹원주부 상종(相種)의 아들, 기순(箕恂)의 동생이다. 1802년에 부임한 김기응 예천군수, 1816년에 부임한 김기증 예천군수와는 4촌 간이다. 부모 슬하에서 유학으로서 1816년(순조 16) 식년 진사시에 3등 62위로 합격하였다.
1932년에 무너진 고평제와 서정제를 예천 군수 재임 중인 1843년 봄에 경상도관찰사 이경재의 도움을 얻어 다시 쌓기 시작하여 1845년에 공사를 준공하였다. 이것을 기념하여 예천 사람들이 모두 '이공김공제‘ 라고 했다. 이는 고평제사적비(정창희 기록)와 서정평제사적비(간사도청 권하정)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서정평제사적비는 기록만 남아있고, 위치는 찾을 길이 없으나, 고평제사적비는 현재 남아있다.
1854년(철종 5) 7월 30일에 나주 목사로서 전라우도 암행어사 박인하의 천거로 왕의 포장을 받아 벼슬을 높여 김기현을 서용하라는 왕명이 있었다.
김기현이 예천고을 원으로 있을 무렵인 1843년(헌종 9)에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가 폭우로 경내 10여 암자가 거의 도괴 유실되고, 내원암만 남게 되었다.
이 무렵 용궁 현감은 성교묵(1788-?)인데, 1841년 김학모 현감 후임으로 부임하여 1943년에 사직 이임하였다. 신창 사람이고, 자는 여수, 본관은 창녕, 양천현령 규주의 아들이다. <張炳昌 論說委員> (醴泉新聞 2005.3.31)
김기현(金箕絢) : 1841년(헌종 7)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1799(정조 23)-?, 홍천(洪川) 사람, 자는 성소(聖素), 본관은 광산, 사옹원주부 상종(相種)의 아들, 기순(箕恂)의 동생, 1802년에 부임한 김기응(金箕應), 1816년에 부임한 김기증(金箕曾)과는 종형제 간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16년(순조 16) 식년 진사시에 3등 62위로 합격하였다. 1832년에 무너진 고평제와 서정제를 예천 군수 재임 중인 1843년 봄에 경상도관찰사 이경재(李景在)의 도움을 얻어 다시 쌓기 시작하여 1845년에 필역(畢役)했다. 이것을 기념하여 예천 사람들이 모두 '이공김공제(李公金公堤)' 라고 했다. 이는 고평제사적비(高坪堤寺跡碑, 鄭昌熙記)와 서정평제사적비(西亭坪堤寺跡碑, 幹事都廳 權夏正)의 비문에 의한 것이다. 서정제비는 기록만 남아있고 위치는 찾을 길 없으나, 고평제비는 현존한다. 1854년(철종 5) 7월 30일에 나주 목사로서 전라우도 암행어사 박인하(朴麟夏)의 천거로 포장(褒獎)되어 벼슬을 높여 서용하라는 왕명이 있었다.(司馬榜目)
김기현(金箕絢) : 1841년(헌종 7)에 예천 군수(醴泉郡守)로 부임하여 1844년(헌종 10)에 이임하였다. 1799(정조 23)-?, 홍천 사람, 자는 성소(聖素), 본관은 광산(光山), 사옹원주부 상종(相種)의 아들, 기순(箕恂)의 동생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16년(순조 16) 식년 진사시에 3등 62위로 합격하였다. 1802년 부임의 김기응(金箕應), 1816년 부임의 김기증(金箕曾)과는 종형제 간이다.(司馬榜目)
김기현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원년 10월 22일 (기축) 원본2682책/탈초본127책 (23/35) 1864년 同治(淸/穆宗) 3년/ ○ 吏曹啓曰, 晉州牧使金箕絢呈狀內, 矣身受由上京矣, 身病猝重, 萬無還官之望云。其身病旣如是, 則有難强令還任, 罷黜, 何如? 傳曰, 此?之前後治績, 雖西漢之循良, 亦無過此, 而三十年爲治, 其所效勞亦旣多矣。如此良吏, 不可無示意, 又不可使無故淹滯, 特爲加資, 南陽府使相換。(www.history.go.kr 2008)
김기현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원년 10월 22일 (기축) 원본2682책/탈초본127책 (29/35) 1864년 同治(淸/穆宗) 3년/ ○ 以申錫愚爲大司憲, 李豊翼爲大司諫, 金奭鎭爲執義, 張世容爲司諫, 金博淵․權魯淵爲掌令, 李應夏․任孝直爲持平, 李守曾爲獻納, 李鎬俊․李容學爲正言, 洪在鉉爲修撰, 沈膺泰爲戶曹參判, 朴珪壽爲典設提調, 趙敬夏爲司僕正, 金直善爲造紙別提, 宋膺洙爲徽慶園參奉, 晉州牧使金箕絢, 今加通政加資事承傳, 祭酒單宋來熙, 開城留守單李承輔, 晉州牧使金箕絢, 南陽府使成?鎬, 已上相換事承傳。再政, 以朴齊寬爲應敎, 蔡東述爲副應敎, 姜夏奎爲校理, 崔益鉉․金漢鼎․卓景秀爲典籍。(www.history.go.kr 2008)
김기현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2년 윤5월 10일 (계유) 원본2690책/탈초본127책 (20/21) 1865년 同治(淸/穆宗) 4년/ ○ 乙丑閏五月初十日辰時, 上御觀物軒。大王大妃殿垂簾, 藥房入診, 勸講, 全羅監司同爲入侍時, 都提調李裕元, 提調朴珪壽, 副提調尹秉鼎, 直閣李世用, 假注書李裕承, 記注官宋宅薰, 別兼春秋趙康夏, 同副承旨張龍逵, 假注書張原相, 記注官宋宅薰, 別兼春秋趙康夏, 全羅監司趙在應, 領事李裕元, 講官洪鍾序, 參贊官張龍逵, 侍讀官任孝直, 假注書李裕承, 記注官宋宅薰, 別兼春秋趙康夏, 各持通鑑第一卷, 以次進伏。醫官李慶年․李在珉․朴演鏞․丁錫胤, 進伏楹外訖。上曰, 史官分左右。裕元進前奏曰, 暑氣轉甚, 聖體, 若何? 上曰, 一樣矣。裕元曰, 寢睡․水刺之節, 何如? 上曰, 一樣矣。裕元曰, 大王大妃殿氣候, 何如? 上曰, 一樣矣。裕元曰, 王大妃殿氣候, 何如? 上曰, 一樣矣。裕元曰, 大妃殿氣候, 何如? 上曰, 一樣矣。裕元曰, 醫官待令, 使之入診乎? 上曰, 置之。大王大妃殿曰, 藥房先退。仍敎曰, 全羅監司進前。在應進前伏訖。大王大妃殿曰, 卿曾經畿伯, 道內民情, 守令治績, 何如? 在應曰, 民情還弊成痼, 向來狀啓, 尙未蒙處分, 守令治績, 豈可盡謂循良, 而別無侵虐之弊, 其中治績最著者, 楊州牧使林翰洙, 坡州牧使柳?, 南陽府使金箕絢, 長湍府使魚在淵, 皆已蒙褒賞之典, 其實績則淵鑑之所俯燭。
大王大妃殿曰, 曾已示意矣。在應曰, 通津府使梁柱台, ?任不過半載, 邑?盡革, 永杜吏逋, 公?改觀, 不費民力, 積弊之邑, 便成完局。陽智縣監文學元, 到底愛民, 動以圖報矢心, 諸般公納, 無少愆滯, 治聲頗多矣。大王大妃殿曰, 諸守令治績, 萬萬嘉尙。在應曰, 此莫非慈聖殿下?聖上, 爲民若保之盛德, 輒下提飭之敎, 所以諸守宰之政, 致此風草之偃也。大王大妃殿曰, 通津府使梁柱台, 待瓜滿, 許用履歷。陽智縣監文學元陞敍。出傳敎 仍敎曰, 方伯守令, 實心務績, 是乃分憂之道也。在應曰, 慈敎切當矣。大王大妃殿曰, 完伯, 今日下直乎? 在應曰, 已爲下直矣。大王大妃殿曰, 道內民生休戚, 一一周察, ?有實績, 勿務苞?等節, 報答沖王委寄之意。在應曰, 慈敎如是鄭重懇惻, 豈無萬分一?竭之心? 而臣才具淺短, 曾在畿甸, 已試蔑效, 且湖南劇務, 非比畿甸, 未知將何以對揚, 不勝悚悶, 而飭敎之下, 當悉心奉行矣。大王大妃殿曰, 盛熱之時, 無撓下去, 善爲過行也。龍逵曰, 別諭, 何以爲之乎? 大王大妃殿曰, 出去諭之也。仍敎曰, 完伯先退。勸講爲之。上開卷, 讀前受音一遍訖。鍾序讀, 自今親兄弟同父母, 止問曰齊王其覇乎, 仍奏釋義訖。上命授書算于鍾序。上讀新受音十遍訖。鍾序還納書算。仍奏曰, 前受音, 有盟洹水之上, 結爲兄弟之文, 曾所御講, 上文天下將相會於洹水之上, 聖聰果記有否? 上曰, 知之。上曰, 張儀復相秦, 是前已相秦, 今復爲之乎? 鍾序曰, 張儀, 前已爲秦相而旋免矣。及說魏請成, 而歸秦復爲相矣。裕元曰, 反覆蘇秦等說, 是皆辯士口氣也。鍾序曰, 此時雖是戰國, 無仁義之世, 豈有親兄弟同父母相爭相傷之理乎? 欲明其蘇秦之不可信, 爲此無理之說, 決非治世有德者之言也。裕元曰, 雖在此時, 決無如此之事, 人臣告君之辭, 似不當如是, 於此一事, 可知其人之不美也。上曰, 善人, 豈有如是之言乎? 鍾序曰, 以燕相子之事言之, 與蘇代結婚, 專出於欲得燕權之意, 而竟至於下文南面行王事, 其於臣分人理, 更無足論, 而大抵賢愚取舍, 在於君上簡心, 亦係於朝廷公議矣。爲人臣而由他徑進, 則必無所不爲也, 此所以鄙夫, 不可與事君, 苟患失之, 無所不爲也。此等處, 深加澄省, 則廷臣取舍進退之際, 自當有淵鑑之益明矣。裕元曰, 士之出處, 自由其道, 舍正由岐, 君子恥之。燕王不得省察於此等處, 故特書名字, 以正史筆也。孝直曰, 張儀說魏王, 以六國之從約, 不可成, 明矣, 而勸事秦, 夫秦, 以虎狼之心, 棄禮義上首功之國也, 其和親之不可成, 尤可明矣。
魏王, 乃請成于秦, 不明甚矣。當是之時, 孟子謂魏王曰, 不嗜殺人者一之, 魏王, 誠用孟子之言, 行仁政則可以一天下也。不此之爲, 而反惑於張儀之詐, 不亦愚乎? 龍逵曰, 講官․儒臣, 備陳無餘, 臣無容敷衍仰達者, 而第戰國之時, 上以功利爲急, 下以榮富爲事, 遊說之士, 彌滿天下, 而儀․秦最其得名者矣。所以儀․秦之遊說, 互相反覆, 而時君之聽納, 又自無常, 可勝惜哉? 此不足與議於盛世休明之治, 而史筆之垂載於後世者, 以其懲惡而斥覇也。裕元曰, 史記者, 不可以一遍讀過而止, 常於燕閒之暇, 玩繹前讀, 則有益於知新之工矣。臣於半載之後, 今始登筵矣, 睿學非不比前將就, 而顧今在廷臣僚之所?祝者, 卽進益進矣。殿下若燭群情之如是, 則自不覺聖工之日就矣。大王大妃殿曰, 主上於講學文理, 雖姑未就, 無厭苦之意, 常於講對罷後, 自內勤讀矣。裕元曰, 勤之一字, 爲學問之本, 雖非講對之時, 常於自內, 誦讀不已, 勤勤孜孜, 則聖學自底於緝熙光明之域矣。何憂乎文理之姑未盡就乎? 大王大妃殿曰, 主上孝根天性, 聰明過人, 雖在短夜之時, 亦不廢溫繹矣。大臣講官, 一心對揚, 善爲輔導, 則其慶幸之心, 當何如哉? 裕元曰, 孝亦由於學問, 而今殿下, 雖在短夜, 不廢卷舒之工, 則可驗聖孝, 原於講學。臣等承此慈敎, 可以退而相慶矣。大王大妃殿曰, 主上雖在沖年, 言語之際, 每多出人意表者, 蓋聖姿英明, 若過數年, 講學漸就, 則凡於發問筵臣, 必有莫能仰對者, 且政令事爲, 亦多聳動觀聽者矣, 予今不可一一稱說也。裕元曰, 外廷之臣, 亦如是爲言也。臣等?聞寡學, 雖在今日, 尙患其不能仰對, 況於聖學成就之後乎? 極爲愧悚矣。大王大妃殿曰, 旱災如此, 祈禱已至四次, 尙無雨意, 晝宵憧憧, 何可暫弛? 裕元曰, 圭璧屢擧, 靈應尙邈, 誠不勝萬萬憂憫矣。臣於日前, 自鄕廬上來, 躬覩農形, 若於四五日間得雨, 則庶有?熟之望, 實心實德, 格于天心, 則豈不敢應之理乎? 大王大妃殿曰, 然矣。若自上, 敬天愛民, 出於誠心, 則自然雨順而風調矣。裕元曰, 誠心求之, 卽日下雨, 古昔哲?, 多有是事, 雖不可一一枚奏, 而今若虔禱, 如古哲?, 則捷?之理, 可立而?矣。上掩卷。上曰, 史官就座。仍命大臣先退。又命退, 諸臣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8)
김기현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2년 12월 15일 (병오) 원본2697책/탈초본127책 (6/34) 1865년 同治(淸/穆宗) 4년/ ○ 傳曰, 右副承旨․同副承旨許遞, 前望入之。承旨前望入之, 金箕絢落點, 尹周鎭添書落點。(www.history.go.kr 2008)
김기현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2년 12월 15일 (병오) 원본2697책/탈초본127책 (7/34) 1865년 同治(淸/穆宗) 4년/ ○ 政院啓曰, 新除授右副承旨金箕絢, 時在京畿南陽府任所, 同副承旨尹周鎭, 時在黃海道黃州牧任所, 斯速乘馹上來事, 下諭, 何如? 傳曰, 許遞, 前望入之。(www.history.go.kr 2008)
김기현 [記事] : 철종실록 6권/ 철종 5년(1854 갑인 / 청 함풍(咸豊) 4년) 7월 30일(정묘) 2번째 기사/ 서계하여 전 감사 정최조 등을 탄핵한 전라우도 암행 어사 박인하를 불러 보다/ 전라우도 암행 어사(全羅右道暗行御史) 박인하(朴麟夏)를 소견(召見)하였으니, 전(前) 감사(監司) 정최조(鄭最朝)․전전(前前) 나주 목사(羅州牧使) 조연명(趙然明)․전(前) 해남 현감(海南縣監) 권최환(權最煥)․전전 현감(縣監) 김명권(金明權)․전 함평 현감(咸平縣監) 이종만(李鍾晩)․전전 현감(縣監) 이진면(李鎭冕)․장성 부사(長城府使) 정우용(鄭愚容)․여산 부사(礪山府使) 이중근(李重根)․전 부사(府使) 한취선(韓取善)․전 전주 판관(全州判官) 윤규석(尹奎錫)․전 영암 군수(靈巖郡守) 민치린(閔致麟)․전 만경 현감(萬頃縣監) 이종필(李鍾馝)․전 고창 현감(高敞縣監) 이익상(李益相)․전 무안 현감(務安縣監) 정세창(鄭世昌)․전 삼례 찰방(參禮察訪) 박호원(朴鎬源)․전 병사(兵使) 윤명검(尹明儉)․전 우수사(右水使) 조관석(趙寬錫) 등을 죄주고, 나주 목사(羅州牧使) 김기현(金箕絢)과 전 목사(牧使) 남병선(南秉善)을 포장(褒獎)하여 승서(陞敍)할 것을 서계(書啓)한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5장 B면/ 【영인본】 48책 587면/ 【분류】 *행정(行政) / *인사(人事) /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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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