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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07 : 김장순(1850부임-1854.11.28.이후이임) : 암행어사의 보고로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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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장슌은 1850년(철종 1)에 조연명 군수 후임으로 1854년(철종 5) 11월 28일 이후에 이임한 예천군수이다. 1854년 11월 28일에 임금이 경상좌도 암행어사 박규수를 소환하여 보았는데, 예천군수 김징순 등을 포장하여 벼슬을 높혀 서용해 달라는 보고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김징순이 예천고을원으로 있을 무렵인 1852년(철종 3)에 박현령이 용문면 대제리에 소요정을 창건하였다. 박현령(1794-1878)은 대제리 출신으로, 자는 강지, 호는 담포, 본관은 함양, 주대의 백부, 한광의 아들, 도량이 넓고, 욕심이 없었고, 소요정을 지어놓고 덕을 쌓았다. 소요정은 정면 2칸, 측면 1.5칸, 팔각지붕이다. 함창인 김진하의 기문과 1920년쯤의 권상규 중수기가 있다.
이 무렵 용궁현감은 박복수와 이준재였다. 박복수는 1852년(철종 2)예 박경선 현감 후임으로 부임하여 1852년(철종 3)에 이임하였는데, 진사로서 부임하여 근평에 의해 물러났다.
이준재 현감은 1852년(철종 3)에 박복수 현감 후임으로 부임하여 1854년(철공 5)에 이임하였다. 서울 사람이고 자는 치원, 본관은 한산, 학생 의년의 아들, 학재(진사)의 동생, 승철의 아버지이다. 부모 사후에 유학으로서 1843년(헌종 8)애 식년 생원시에 3등 99위로 합격하였다. 1848년(헌종 14)에 종부시 직장이었고, 1851년에 용궁현감, 1852년에 단양군수로 승진되어 갔다. 아들 승철(1829-?)의 자는 경첨, 부모 슬하에서 유학으로서 1848년(헌종 14)에 증광 생원시에 3등 52위로 합격하였다.(작성 장병창 예천신문 20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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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