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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211-1:임승수(1862부임-1866이임)
작성자장병창 @ 2020.12.12 06:44:32

  예천고을원 211-1 : 임승수(1862부임-1866이임) : 동학 교주가 예천에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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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수(林勝洙, 1816~?)는 1862년(철종 13)에 유건환 군수 후임으로 부임하여 1866년(고종 3)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서울 사람, 자는 치경(穉敬), 본관은 나주, 용양위부호군 한진(翰鎭)의 아들, 농수의 동생, 원상․영상의 아버지이다. 편부 슬하에서 유학으로서 1836년(헌종 1) 증광 진사시에 2등 22위로 합격하였다.

예천 군수 재임 중인 1866년 정월에 천주교 신자 전 사베리오와 이 요안을 잡아서 그들의 고향인 공주 감영으로 이송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순교하였다. 그 후 장흥 도호부사에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첫째 아들 원상(1845~?)의 자는 윤선, 부모 사후에 유학으로서 1876년(고종 13) 식년 진사시에 3등 41위로 합격하였는데 포천현감 응수에게 양자로 갔다.

임승수가 예천고을 원으로 있을 무렵인 1862년에 지보면 대죽리에 있던 권산해의 정충각이 지보면 신풍리 염송산으로 옮겨 세워졌고, 1864년(고종 1)에는 보문면 미호리에 김손을 위한 추원재를 후손이 세웠다.

1865년(고종 2) 「대전회통」에 의하면 예천의 황장목으로 왕실의 널인 내자궁판으로 마련되었고, 12월에 예천군 예목리의 천주교회 회장 이윤경 요안의 맏아들 요안과 이웃마을인 건아기의 전 사베리오가 예천군 포교에게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듬해 정월 27일에 순교하였다.

1866년 2월에는 프랑스 사람 깔래 강 신부가 예천 건아기 천주교 공소를 방문하였고, 동학교주 최시형이 예천군 풍양면 산수리로 이사를 하였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5-05-30)

 

  임승수(林勝洙) : 1862년(철종 13)에 부임한 예천 군수이다. 1816(순조 16)-?, 서울 사람, 자는 치경(穉敬), 본관은 나주, 용양위부호군 한진(翰鎭)의 아들, 긍수(肯洙)의 동생, 원상(元相)ㆍ영상(永相)의 아버지이다. 편부 슬하(嚴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35년(헌종 1) 증광 진사시에 2등 22위로 합격하였다. 예천 군수 재임 중인 1866년 정월에 천주교 신자 전(田) 사베리오와 이 요안을 잡아서 그들의 고향인 공주 감영으로 이송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순교하였다. 용문면 내리지 용문사 동구 주자장 느티나무 아래에 선정비가 남아있다. 예천 군수 이임 후 장흥(長興) 도호부사를 지냈다. 첫째 아들 원상(1845生, 字尹善)은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876년(고종 13) 식년 진사시에 3등 41위로 합격하였는데, 포천(抱川) 현감 응수(膺洙)에게 양자로 갔다.(司馬榜目)

 

  임승수(林勝洙) : 예천 군수이다. 그의 아들인 영상(永相, 1857~?)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경념(景念), 이조참판 한진(翰鎭)의 손자로, 예천군수 승수(勝洙)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1879년(고종 16) 율시로 전강(殿講)에 합격하여 곧바로 전시에 나아갈 자격을 얻고 이 해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관로에 나아갔다. 홍문관 수찬․사간원 지평․헌납 등 여러 언관직을 거쳐 1890년 좌통례에 제수된 뒤 대왕대비 조씨의 장례에서의 노고에 대한 포상으로 당상관으로 진급하였다. 1900년에는 겸장례 비서승(兼掌禮?書丞)에서 종2품으로 진급하였다. 그 뒤 1902년 장례원 소경(掌禮院少卿)으로 제수된 외에는 대체로 궁내부 특진관으로서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칙임관(勅任官) 4등에 서품되어 있었다. 일제가 통감부를 통한 통치를 시작한 뒤인 1907년 칙임관 3등으로 진급하였다. 역임한 관직으로 미루어보아, 의례 절차에 밝았던 인물로 판단된다.(高宗實錄, 國朝榜目, 吳宗祿(韓國學中央硏究院))

 

  임승수(전임 예천 군수 임승수 등에 대해 형추하여 실정을 캐낼 것을 청하는 의금부의 계목) [古文獻] : 날짜 : 2005년 02월 25일/ 원문형태 : DOC/ 출처 : 민족문화추진회(國家知識情報統合檢索시스템 2005)

 

  임승수(前任 醴泉郡守 林勝洙 等에 對해 刑推하여 失政을 캐낼 것을 請하는 義禁府의 啓目) [記事] : 날짜 : 1867년 08월 21일(음력)/ 고종 4년 정묘(1867, 동치 6)/ 8월 21일(신축) 맑음/ 전임 예천 군수 임승수 등에 대해 형추하여 실정을 캐낼 것을 청하는 의금부의 계목/ ○ 또 계목에,󰡒전임 예천 군수(醴泉郡守) 임승수(林勝洙), 전전임 비안 현감(比安縣監) 정재주(鄭在周), 전임 경산 현령(慶山縣令) 조병위(趙秉瑋), 전전임 자인 현감(慈仁縣監) 조익증(趙翼增), 제포 만호(薺浦萬戶) 김인혁(金寅爀) 등이 원정(原情)에 운운하였습니다. 전지 내의 죄상에 대해 범범하게 지만(遲晩)이라 하였으니, 모두 형추(刑推)하여 실정을 캐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는데, 판부하기를,󰡒형추는 그만두고 의처하라.󰡓하였다./ 정보제공기관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제공기관 : 민족문화추진회(www.knowledge.go.kr 2006)

 

  임승수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용호한록 / 龍湖閒錄二 / 第十冊 / 五○六, 禮曹草記 二十三日 / ...金炳國, 內下大豹皮賜給, 金炳弼內下大豹皮一令, 田十結, 奴婢各三口賜給, 別兼春秋 趙寅燮, 前檢閱 金鶴根, ?陞?, 注書 柳芝榮陞六, 捲草陪進 林勝洙, ?道次知 崔錫祐 崔基俊, ?兒馬一匹賜給, 內醫 金鴻男外職調用, 議藥同參 李在俊本廳調用, 金相羲, 李章燁 金蓍仁, 金慶勳?高品付料, 待令醫官 鄭有曾 府使除授, 金濟慶, 鄭在元, 奏時官 彭繼憲, ?守令除授, 待令醫官 李鎭夏, 捲草時東西唱前引儀, 李亨烈, 朴鍾完, 寫字官 李仁模, 畵員 崔漢進, ?外職調用, 待令醫官 金▣(土+晉) 守令待?陞?, 別入直醫官 卞鍾浩等八人, ?加資, 李? 趙致中?相當職調用, 其餘醫官, 擇日官, 奏時官, 員役等, ?依判下施賞°(www.history.go.kr 2008)

 

  임승수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3년 6월 22일 (기유) 원본2703책/탈초본128책 (13/25) 1866년 同治(淸/穆宗) 5년/ ○ 再政。以朴鳳夏爲大邱判官, 林勝洙爲長興府使, 金靖鎭爲醴泉郡守, 南弘重爲南平縣監。(www.history.go.kr 2008)

 

  임승수 [記事] : 승정원일기/ 고종 4년 7월 21일 (임신) 원본2716책/탈초본128책 (40/43) 1867년 同治(淸/穆宗) 6년/ ○ 吏曹啓目, 粘連觀此慶尙左右道暗行御史朴瑄壽書啓, 則慶州前府尹洪翼燮, 尙州前牧使金曾鉉, 晉州前牧使李恒翼, 咸安前郡守白樂憲, 延日前縣監尹養桂, 機張前前縣監鄭泰源, 黃山前察訪金慶洽等段, 繡啓旣請令攸司稟處, 更無可論是白遣, 慈仁縣監李章烈段, 頑吏之揮刀逼迫, 大有關於世綱, 當場之嚴刑致斃, 實危急而用權擅便之失, 在所難免是如爲白乎?。英陽前縣監尹弼求段, 府吏容奸, 不無偏聽之?, 邑子干政, 難免招謗之端是如爲白乎?。漆原縣監兪鎭國段, 文識淺短, 聽訟昧方委諸吏手, 多見欺蔽是如爲白乎?。所上項三邑守令, 竝只罷點爲白乎?。咸陽郡守徐頀淳段, 專聽奸猾之言, 厚招?屑之謗, 防川民饋餉之需, 燒?戶救恤之資, 初無官?錢之捐出, 竝以儲置米中取用。甲子秋營作米八十石, 初不以錢排捧, 竝以本色責納, 每石六兩執錢, 合錢爲四百八十兩, 而二百四十兩, 以詳定價, 輸送于監營, 其餘二百四十兩, 取爲私用。丙寅春飢民救急時, 勒買富民租七十石, 以小斗精略, 分解?衍, 爲一百四十八石報營, 名實不符, 衆謗莫掩。

 

  乙丑春還穀分給時, 革罷戶還之規, 創出結還之名, 把束之微, 混入排定, 升斗之穀, 無所分給, 及其秋捧也, 白徵不食之還穀, 使彼無告之民, 不耐催科之毒, 賣任賣鄕之錢, 至爲數千餘兩之多。衰邁之政, 無望振刷是如爲白乎?。昌樂察訪金鼎燮段, 前官時, 本外驛吏任債半減節目, 卽矯?之得宜, 甘聽奸吏之言, 期欲收奪, 刑囚督納, 無所不至。虐焰所肆, 繼以酷刑, 年至八十者, 鎖枷桎梏, 宛轉呼號, 擧止駭悖, 安郊驛位土, 久爲豪强之所占奪。故關飭禁斷, 使付該驛, 暗結土豪, 聲氣相謬, 以繡衣, 長繡衣乎? 過去之後, 好樣措處等說, 登諸文字, 現以發露, 無識無憚。誠極駭惡是如爲白有臥乎所。上項一邑守令, 一驛察訪, 竝只爲先罷黜。令該府拿問處之爲白乎?。密陽前前府使李象億段, 吏鄕, 自下欺蔽, 詞訟, 爲捧賂之門, 冊客, 從中濁亂, 差任, 爲目行之務, ?謗, 自多可駭, 輿情, 尙有餘?是如爲白乎?。淸道前前郡守李寅稷段, 專昧事務, 內而?策之牽制, 外而奸猾之壅蔽, 隨處濁亂, 多有駭聽, 萬餘吏逋, 白徵於民, 狼藉呼怨是如爲白乎?。草溪前郡守李穉赫段, 但其柔善太過, 束濕不嚴, 奸吏從以舞弄, 下納隨以愆滯是如爲白乎?。榮川前郡守任思準, 但其處事不能審克, 持身太涉燥率, 聽訟之際, 損體不少, 縱緣豪强之悖習, 實爲字牧之羞恥是如爲白乎?。南海前縣令具然承段, 運材時雇價分給, 實爲取怨之端, 遞等後吏鄕差任, 難免?屑之謗是如爲白乎?。彦陽前縣監李基肇段, 接物則失於剛果, 聽斷則溺於偏信, 訟牒之捧賂操縱, 下記之減數無節, 俱係乖當, 動輒得謗是如爲白乎?。玄風前縣監張膺杓段, 偏聽奸猾之諂?, 每多視聽之欺蔽, 借曰官無所失, 是何民怨之朋興? 無乃吏綠爲奸, 有此賂說之狼藉, 配囚之潛越他邑, 已違法例, 竟至致斃, 尤極驚駭是如爲白乎?。義興前前縣監宋寅玉段, 全昧事理, 膠固不通, 奸校參於訟牒, 飜覆之弊滋甚, 平民施以牢刑, 顧恤之義安在? 瘡?隨以百出, 紀綱日益頹敗, 邑蔽無矯?之望, 窮?多橫罹之厄是如爲白乎?。禮安前縣監金禹銖段, 邑有豪强之姻戚, 公堂太擾, 訟牒之飜覆無常, 邑子多?於干囑, 軍額之亂雜, 殊甚, 官長無奈於牽制, 每緣退托於私故, 以致愆滯於公納, 邑勢日以頹敗, 民生無所依賴是如爲白乎?。前前縣監李有謙段, 其奈手勢太滑, 百計網利, 吏任之差出, 非賂不得, 民訟之立落, 惟貨是求, 捉致稍饒之民, 構成難名之罪, 刑威所加, 討索甚急, 吏奴處加下錢, 專不報給, 禁府之就理債, 亦不區劃, 弊局尤爲困?, 怨說至今未已是如爲白乎?。

 

  慈仁前縣監黃起漢段, 周歲?民, 百度俱廢, 盃酌滿座, 邑子因緣交通, 簿牒堆案, 奸猾從以欺蔽, 臨檢而經埋, 獄體安在? 差任而數遞, 賂說可鄙, 是如爲白乎?。漆原前縣監李儒城段, 本自懦弱, 兼以鄙?, 決訟則一聽房嬖之低昴, 差任則惟視賂錢之多寡, 凡百施措, 一無可觀是如爲白有臥乎所。上項十二邑前任守令, 不可以已遞而勿論, 竝只罷職爲白乎?。昌原前府使李明錫段, 刑杖之濫用示威, 吏無所措手, 訟牒之無端白退, 民何以伸枉? 改差座首, 捧賂一千兩, 軍器修繕之役, 將以六百五十兩捐補之意, 對衆揚言, 及其臨歸之時, 只以內下錢四百五十兩, 漕倉都監賣任錢二百兩, 使之修繕, 抄出稍饒之民, 稱以軍器勸助錢, 勒捧之數, 至爲二千四百兩之多。聽乎輿論, 尙有餘怨是如爲白乎?。金海前前府使許傳段, 長在醉鄕, 試問所業何事? 洞開公門, 自是太柔則廢, 邑子從以糾結, 吏隷無所畏憚, 百度俱弛, 衆弊層生。本邑固多許姓之民, 而講其同宗之誼, 恣行非義之擧, 以言乎山訟, 則一聽其言, 卽爲官掘, 使彼無告之民, 積抱幽鬱之恨, 以言乎債訟則倍以徙之。利過於邸債, 星火之督, 急於公貨, 徵姻徵族, 畢刷乃已, 饒戶之蕩敗, 窮?之?賣, 訟怨之聲, ?耳可厭。招致民間粗解文字者, 使之執贄, 稱以弟子, 挾雜浮浪之類, 聞風爭趨, 束脩之資, 實爲苞?。習熟官衙, 而乘時行悖者, 有之, 締結訟民, 而非理干囑者, 有之, 誤政害事, 專由於此。喜於利口之諂媚, 悅於土産之饋遺, 有識者, 無不唾鄙, 下隷輩, 亦多竊笑。富民崔永達處, 稱以願納錢減數, 所捧賂錢, 爲七百兩, 又聽其囑, 以私債之難捧, 移付公錢, 所貸用錢, 爲五百兩。邑民裵東鐸處三百兩, 金斗榮處三百兩, 韓啓宇處二百兩, 名雖貸用, 竝皆不報。鄕人盧周八, 約以座首差給, 暗捧賂錢三百兩, 而終不差給, 及至還索之時, 乃以風憲倉監之任, 苟且彌縫。擧措 遁, 令人?顔, 吏房處加下錢六百兩, 遞歸時加捧三百兩, 酒技贖之兩年徵納, 鄕任債之四次所捧, 零?亦聚, 細大無遺。乃與衙客由吏, 交征其利, 其奈百務之壞裂, 損體之端不一。躬犯之失已著是如爲白乎?。東萊前前府使姜?段, 才能有餘, 衒耀多術, 下納米之作錢所剩, 前後最濫。臣於別單, ?有論刑, 事關邊虞, 不可寬貸。樓堞?宇, 修理所入之物, 始爲捐?, 竟以公錢入下, 商人之構罪徵贖, 鄕任之視賂出帖, 大失初望, 久自?露, 多有餘謗是如爲白乎?。柒谷府使朴周雲段, ?任不過五朔, 政令全沒頭緖, 家在本道, 每多私謁之囑, 三易鄕任, 難免引賂之?, 甲子査正之軍, 更何存拔而取怨, 吏房加下之錢, 亦爲苟且而彌縫, 夫何遞歸之後? 謂有所捧於田吏, 責納無名之錢, 至有呈狀之擧, 士夫之廉防, 固難責備, 官吏之體面, 亦足可羞是如爲白乎?。

 

  醴泉前郡守林勝洙段, 爲政全無法紀, 偏聽而昏?, 猾吏得以?奸, 隨賂而?覆, 窮民無處伸?, 上納錢之經年過當, 無望振刷, 祈雨祭之鄕任替行, 尤係不法。願納錢分排收斂, 一任吏鄕之手, 操縱存拔, 無所不至。饒民各處減數捧賂錢, 爲一千三百四十兩零, 排定中追減名色, 爲六百八十兩, 未收名色, 爲六千七百二十九兩八錢, 混雜迷藏, 粧撰文簿, 上納之時, 盡爲換錢, 而馱價錢一千一百六十二兩五錢, 歸屬無處, 再次吏房差出捧賂錢, 爲七千五百兩, 四次把任捧賂錢, 爲五千二百兩, 鄕任面任之更換迭易, 不可枚數。完邑因作弊局, 吏?轉成逋蔽, ?鬱之言, 尙今未已是如爲白乎?。慶山前縣令趙秉瑋段, 五載四易吏鄕, 一心只在營私, 於利則廉恥不顧, 於賂則巨細無遺。第言其捧賂之數, 則賣鄕任錢, 爲一千七百九十兩, 賣校任錢, 爲五百十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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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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