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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25-5 : 김갑규(1889부임-1890이임) : 토색 처벌 문제로 백활을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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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규 [記事] : 고종실록 43권/ 고종 40년(1903 계묘 / 대한 광무(光武) 7년) 10월 13일(양력) 1번째 기사/ 김갑규를 궁내부 특진관에, 이민항을 중추원 의관에 임명하다/ 종2품(從二品) 김갑규(金甲圭)를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에, 종2품 백남석(白南奭), 이민항(李敏恒)을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4등에 서임(敍任)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7책 43권 42장 A면/ 【영인본】 3책 29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김갑규 [記事] : 고종실록 48권/ 고종 44년(1907 정미 / 대한 광무(光武) 11년) 1월 22일(양력) 2번째 기사/ 민병석 등을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하다/ 비서감 경(?書監卿) 민병석(閔丙奭), 의양군(義陽君) 이재각(李載覺), 종1품 이건하(李乾夏)․김성근(金聲根)․한규설(韓圭卨)․이봉의(李鳳儀)․김영철(金永哲), 정2품 정주영(鄭周永)을 궁내부 특진관(宮內府特進官)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1등에 서임(敍任)하였다. 종2품 민경식(閔景植)을 비서감 경에, 종1품 김종한(金宗漢), 정2품 조동희(趙同熙)․조종필(趙鍾弼)․서정순(徐正淳)․이원일(李源逸)․이우면(李愚冕), 직학사(直學士) 이용선(李容善)을 궁내부 특진관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 2등에 서임하였다. 종2품 노영경(盧泳敬)․신태관(申泰寬)․이경하(李敬夏)․임영상(林永相)․윤헌(尹?)․이희원(李喜元)․장승원(張承遠)․김종근(金宗根)․민찬호(閔贊鎬)․권영수(權榮洙)․정인학(鄭寅學)․민철훈(閔哲勳)․김병길(金炳吉)․강우형(姜友馨)․김갑규(金甲圭)․이종필(李鍾弼)․남규희(南奎熙)․윤조영(尹祖榮)․서긍순(徐肯淳)․이명직(李明稙)․심상황(沈相璜)을 궁내부 특진관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 3등에 서임하였으며, 종2품 최석민(崔錫敏)을 중추원 찬의(中樞院贊議)에 임용하고 칙임관 2등에 서임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2책 48권 7장 B면/ 【영인본】 3책 45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8)
김갑규 [記事] : 순종실록 1권/ 순종 즉위년(1907 정미 / 대한 융희(隆熙) 1년) 9월 6일(양력) 2번째 기사/ 황제 즉위시 수고한 관리 이윤용, 정한조, 김학진 등을 표창하다/ 진하(陳賀)하고 조서를 내렸을 때의 각 차비관(差備官) 이하의 관리와 추봉(追封)․진봉(進封)하였을 때의 정사(正使) 이하의 관리, 그리고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만들었을 때의 당상(堂上) 이하의 관리들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궁내부 대신(宮內府大臣) 이윤용(李允用), 부사(副使) 정한조(鄭漢朝)․ 김학진(金鶴鎭), 독금책관(讀金冊官) 민찬호(閔贊鎬), 독금보관(讀金寶官) 김갑규(金甲圭), 비서승 겸 장례(?書丞兼掌禮) 박용원(朴用元)․ 김천수(金天洙)․ 조병건(趙秉健), 선조관(宣詔官) 이범설(李範?), 제주 서사관(題主書寫官) 민영린(閔泳璘), 전표관(殿表官) 김사중(金思重)․ 송지헌(宋之憲), 예식관(禮式官) 김조현(金祚鉉)․ 현백운(玄百運)․ 고희성(高羲誠)․ 엄달환(嚴達煥)․ 이필균(李弼均)․ 조재승(趙在升)․ 우기원(禹麒源), 시종(侍從) 이교영(李喬永)․ 심선택(沈選澤), 장절자(掌節者) 박서양(朴敍陽)․ 이회구(李會九), 집례(執禮) 김세익(金世益)에게 모두 가자(加資)하고, 정2품 이용직(李容直), 종2품 권응선(權膺善)․ 김춘희(金春熙)․ 정현영(鄭顯英)․ 황기연(黃耆淵)․ 한용교(韓龍敎)․ 김영전(金永典), 정3품 이수만(李秀萬)․이정식(李貞植)․ 이승우(李承宇)에게 모두 백관가(百官加)를 직접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1권 15장 B면/ 【영인본】 3책 494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김갑규 [記事] : 순종실록 1권/ 순종 즉위년(1907 정미 / 대한 융희(隆熙) 1년) 11월 30일(양력) 1번째 기사/ 이근명, 민영규, 조병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1품 이근명(李根命), 민영규(閔泳奎), 조병호(趙秉鎬), 윤택영(尹澤榮), 민영소(閔泳韶), 종1품 윤용구(尹用求), 김종한(金宗漢), 정2품 민상호(閔商鎬), 김사준(金思濬)을 규장각 지후관(奎章閣祗候官)에, 종1품 김학진(金鶴鎭)을 규장각 대제학(大提學)에, 정1품 민영휘(閔泳徽), 종1품 박용대(朴容大), 김사철(金思轍), 조정희(趙定熙), 김가진(金嘉鎭), 정2품 민영린(閔泳璘)을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에, 정2품 조동희(趙同熙)를 규장각 경(卿)에, 종1품 김윤식(金允植)을 황실 회계 감사원 경(皇室會計監査院卿)에, 종2품 박제빈(朴齊斌)을 승녕부 부총관(承寧府副總管)에, 정2품 김춘희(金春熙)를 승녕부 시종장(承寧府侍從長)에, 정2품 윤덕영(尹德榮)을 황후궁 대부(皇后宮大夫)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1등에 서임(敍任)하였다. 정2품 이중하(李重夏)를 장례원 경(掌禮院卿)에, 정2품 조종필(趙鍾弼), 조한국(趙漢國),
김갑규(金甲圭), 심상황(沈相璜)을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에, 종2품 최석민(崔錫敏)을 내장원 경(內藏院卿)에, 종2품 이겸제(李謙濟)를 주전원 경(主殿院卿)에, 종2품 이회구(李會九)를 시종원 부경(侍從院副卿)에, 종2품 김각현(金珏鉉)을 전선사 장(典膳司長)에, 종2품 고희경(高羲敬)을 동궁 대부(東宮大夫)에, 정2품 엄준원(嚴俊源)을 장례원 전사(掌禮院典祀)에, 종2품 엄주익(嚴柱益)을 규장각 지후관(奎章閣祗候官)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 2등에 서임하였다. 종2품 이진구(李晉九)를 탁지부 서기관(度支部書記官)에, 한상학(韓相鶴)을 시종원 시종(侍從院侍從)에, 종2품 이항구(李恒九)를 승녕부 시종(承寧府侍從)에, 종2품 김규희(金奎熙)를 장례원 장전관(掌禮院掌典官)에, 종2품 김천수(金天洙)를 규장각 기주관(奎章閣記注官)에, 종2품 김유성(金裕成)을 규장각 전제관(奎章閣典製官)에, 종2품 김갑수(金甲洙)․ 강경희(姜敬熙)․ 조기하(趙夔夏)․ 윤우선(尹寓善)․ 민영만(閔泳晩)․ 홍성우(洪性友)․ 허석(許?)․ 김인흠(金寅欽), 정3품 조명희(趙命熙), 법부 서기관(書記官) 김회수(金晦秀)를 규장각 부제학에, 종2품 서긍순(徐肯淳)․ 엄주승(嚴柱承)․ 장호진(張浩鎭)․유응렬(劉應烈)․ 유신혁(劉臣赫)․ 김영진(金永桭)․ 홍건(洪楗)․ 김명제(金明濟)․ 김희석(金禧錫), 정3품 이범석(李範錫)․ 윤달훈(尹達勳)․ 안영기(安永基)․ 정관조(鄭觀朝)․ 이영균(李泳均)․ 손석기(孫錫基)를 장례원 전사에, 용천 부윤(龍川府尹) 권봉수(權鳳洙)를 내장원 부경(內藏院副卿)에, 종2품 서상훈(徐相勛)을 수학원 차장(修學院次長)에, 정3품 서병효(徐丙孝)를 시종원 전의장(侍從院典醫長)에, 종2품 조경준(趙慶濬)을 황실 재산 정리국 차장에, 종2품 심의석(沈宜碩)을 내장원 기사(內藏院技師)에 임용하고 모두 칙임관(勅任官) 3등에 서임하였다. 궁내부 차관(宮內府次官) 고미야 사보마쯔〔小宮三保松〕에게 제실 재산 정리국 장관을 겸임시키고, 장전관 김규희(金奎熙)에게 장례원 전사장(掌禮院典祀長)을 겸임시켰다./ 【태백산사고본】 2책 1권 34장 A면/ 【영인본】 3책 50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8)
김갑규 [記事] : 순종실록 2권/ 순종 1년(1908 무신 / 대한 융희(隆熙) 2년) 5월 15일(양력) 1번째 기사/ 진종, 헌종, 철종 황제의 옥책문 제술관 등을 임명하다/ 궁내부(宮內府)에서 주청(奏請)하여 진종 소황제(眞宗昭皇帝)의 옥책문 제술관(玉冊文製述官)에 이근명(李根命), 서사관(書寫官)에 이중하(李重夏), 옥보 전문 서사관(玉寶篆文書寫官)에 윤택영(尹澤榮), 효순 소황후(孝純昭皇后)의 옥책문 제술관에 김학진(金鶴鎭), 서사관에 조병필(趙秉弼), 옥보 전문 서사관에 민병석(閔丙奭), 헌종 성황제(憲宗成皇帝) 옥책문 제술관에 민영규(閔泳奎), 서사관에 조동희(趙同熙), 옥보 전문 서사관에 이재면(李載冕), 효현 성황후(孝顯成皇后)의 옥책문 제술관에 이용원(李容元), 서사관에 김갑규(金甲圭), 옥보 전문 서사관에 이완용(李完用), 효정 성황후(孝定成皇后)의 옥책문 제술관에 박제순(朴齊純), 서사관에 이근교(李根敎), 옥보 전문 서사관에 민영휘(閔泳徽), 철종 장황제(哲宗章皇帝)의 옥책문 제술관에 조병호(趙秉鎬), 서사관에 윤용구(尹用求), 옥보 전문 서사관에 이재완(李載完), 철인 장황후(哲仁章皇后)의 옥책문 제술관에 김윤식(金允植), 서사관에 홍승목(洪承穆), 옥보 전문 서사관에 민영소(閔泳韶)를 차출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2권 14장 A면/ 【영인본】 3책 51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김갑규 [記事] : 순종실록 2권/ 순종 1년(1908 무신 / 대한 융희(隆熙) 2년) 7월 23일(양력) 5번째 기사/ 진종, 헌종, 철종 황제의 신주 서사관을 정하다/ 궁내부(宮內府)에서 주청(奏請)하여 추존(追尊)할 때 진종 소황제 제주 서사관(眞宗昭皇帝題主書寫官)에 윤덕영(尹德榮)을, 효순 소황후 제주 서사관(孝純昭皇后題主書寫官)에 박제순(朴齊純)을, 헌종 성황제 제주 서사관(憲宗成皇帝題主書寫官)에 이용원(李容元)을, 효현 성황후 제주 서사관(孝顯成皇后題主書寫官)에 김갑규(金甲圭)를, 효정 성황후 제주 서사관(孝定成皇后題主書寫官)에 홍순형(洪淳馨)을, 철종 장황제 제주 서사관(哲宗章皇帝題主書寫官)에 이재각(李載覺)을, 철인 장황후 제주 서사관(哲仁章皇后題主書寫官)에 김승규(金承##圭)를 차출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2권 22장 A면/ 【영인본】 3책 51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8)
김갑규 [記事] : 순종부록 12권/ 순종 14년(1921 신유 / 일 대정(大正) 10년) 3월 4일(양력) 3번째 기사/ 이왕직 장관 이재극이 고종을 세실에 두는 문제를 의논하다/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남작(男爵) 이재극(李載克)이 아뢰기를, 고종(高宗)의 세실(世室)에 관한 일을 회의(會議) 제원(諸員)에게 의견을 거두어들이니, 후작(侯爵) 이완용(李完用)이 헌의(獻議)하기를, 고종의 큰 공과 큰 덕은 세실(世室)로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 천하의 공의(公議)이니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마소서.라고 하였고, 백작(伯爵) 이지용(李址鎔)이 헌의하기를, 고종의 신공(神功)과 성덕(聖德)은 진실로 세실로 받들어야 하니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전 참정(參政) 한규설(韓圭卨)이 헌의하기를, 고종을 세실로 받들어 모시는 것은 모두 함께 원하는 바이니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마소서.라고 하였고, 전 찬정(贊政) 이용직(李容稙)이 헌의하기를, 환난(患難)을 겪은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세실에 모시는 것은 본래 바꿀 수 없는 전범(典範)입니다. 지금 고종을 세실에 받드는 것이 진실로 여러 의견과 합치하니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남작 이종건(李鍾健)이 헌의하기를, 고종의 성덕과 넘치는 공덕(功德)은 전고(前古)를 훨씬 뛰어넘으니 세실에 받들어 모시는 것이 진실로 모두 함께 바라는 바이니 다시는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하소서.라고 하였고, 전 판서(判書) 민영달(閔泳達)이 헌의하기를, 고종의 성스러운 공덕(功德)과 신비스런 덕행은 진실로 세실로 높이 받들어 모셔야 하니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다. 자작(子爵) 조민희(趙民熙)가 헌의하기를, 고종의 큰 공과 성스러운 덕행은 세상을 마치도록 잊지 못합니다. 세실에 받들어 모시는 것이 진실로 전례(典禮)에 합당하다는 것이 모두 모여 의논한 바가 일치하니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고, 남작 박용대(朴容大)가 헌의하기를, 우리 고종의 오기(五紀) 동안의 통치는 넘치는 공덕과 뛰어난 위업을 역사에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지금 대료(大僚)들이 국조(國朝)에서 세실을 미리 정한 예법을 들어 효덕전(孝德殿) 담제(?祭) 기간 전에 하는 것을 우러러 청하니, 이것은 진실로 온 나라가 함께 원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속히 욕의를 행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작 이병무(李秉武)가 헌의하기를, 고종의 성덕과 신공은 마땅히 높이 세실로 받들어야 하니 참으로 예전(禮典)과 합치됩니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전 장례경(掌禮卿) 이우면(李愚冕)이 헌의하기를, 세실을 미리 정하는 일은, 우리 가례(家禮)에 이미 인산 전에 의정(議定)한 예(例)가 있습니다. 지금 효덕전 담제 기일이 장차 다가옴에 대료(大僚)들이 계속하여 세헌(世獻)을 우러러 청하는 것은 진실로 온 나라의 한 가지 심정에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작 성기운(成岐運)이 헌의하기를, 지금 고종을 세실에 받드는 것은 천지(天地) 간에 세워놓더라도 어그러짐이 없고, 귀신에게 물어보더라도 의심스럽지 않을 것이니, 어찌 감히 다른 의견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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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