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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33-4 : 김상일(1901.9.14부임-1901.12.18이임) : 용궁군수에서 예천군수로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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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박기양과 이원호간의 山訟에 대한 판결이유와 소장 13장을 보냄 / 문서번호 報告書 第一百三十號 / 발송일 光武三年十一月四日(1899년 11월 04일) / 발송자 平理院裁判長 曺潤承 / 접수일 接受 光武三年月日 第 號 / 수신자 議政府贊政法部大臣 權在衡 閣下 / 慶尙北道奉化郡居 朴琦陽이 醴泉郡居 李元浩에 對? 山訟案請願書를 接準?온 部訓令 第百七十號內槪에 朴民之?이 果係當掘이라도 入葬이 旣爲一百三十年之久오 且以步數로 言之라도 此民所訴와 該郡報告가 互有差異?더러 若係當禁 則百餘年來에 何不起訟이리오 至以聽理之法으로 言之라도 大事六十年之限이 昭載明文이거? 據何以受理此訟이며 緣何而斷以應掘인지 參以情法에 俱涉未妥?니 到卽該案受理與判決事由를 火速査明報來等因이온바 此를 準査?오니 該案에 對?야 光武二年九月十四日에 朴民이 先爲來訴?오? 前高等裁判所에셔 接受?야 山在郡에 指令?기를 入葬年久之塚을 令始起??이 抑有何故인지 到卽朴李之入葬年兆與相訟有無와 該山全局을 必以親審圖尺?야 當禁與否와 步數幾許를 消詳註錄馳報라?얏?온? 其時裁判長은 申箕善이오 檢事? 尹性普이오며 又於同年十月二十五日에 李民의 訴答을 據?야 圖尺馳報? 意로 該郡에 指飭?얏슨즉 待査報處辦?리니 知悉? 事로 指令?얏?온? 其時裁判長은 徐正淳이오 檢事? 金洛憲이온바 本年四月二十四日에 醴泉郡守 李寅聲의 圖形査報를 接準?온즉 該山全局이 果係李民之所有오 且以年兆言之라도 李民之先入이 昭然有據이올?더러 相距步數가 爲六十六尺즉 四品官墳墓에 在法當掘이오되 年久訟案을 不可以一指令處斷故로 兩造質査後 歸結乃已라?야 朴民을 押上? 意로 該郡査報에 對?야 指飭?얏?온? 其時裁判長은 兪箕煥이오 檢事? 金正穆이오며 及其質訊之場에 朴民이 供稱 該郡圖尺이 從實치 못?기로 龍宮郡守 金相一로 別定査官?야 使之圖形報來矣러니 該報告를 接準?온즉 兩?相距步數가 爲六十四尺五寸等因이기로 準此決折?얏?온? 其時裁判長은 洪鍾宇오 檢事? 鄭?圭이온바 其受理與判決事由가 如右이?기 該訴狀十三度? 送上?오며 玆에 報告?오니 査照?심을 爲望. / 平理院裁判長 曺潤承 議政府贊政法部大臣 權在衡 閣下 光武三年十一月四日 接受 光武三年月日 第 號(www.history.go.kr 2008)
김상일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충청북도재판소에서 김성업 옥사와 관련한 군수 7명의 조사에 대해 속히 처결해줄 것 청함 / 문서번호 報告書 第五十二號 / 발송일 光武八年七月二十八日(1904년 07월 28일) / 발송자 忠情北道裁判所判事 李勝宇 / 접수일 接受 光武八年 月 日 第 號 / 수신자 法部大臣 閣下 / 결재자 大臣 協辦 / 六月三日에 平理院訓令을 接準內開에 法部訓令을 承準?야 忠州郡金聖業獄事人犯及査檢官을 本院에셔 審辦??스니 該獄人犯等과 四檢三査? 七郡守를 定巡檢押上等因이올기 同金聖業獄事正犯干連看證屍親等은 先卽押上??고 査檢七郡守中 忠州前郡守 鄭寅國 淸風前郡守 金相一은 間移他道?야 具由於報辭??고 管下槐山郡守 閔泳殷 延?郡守 李敏濟 報恩郡守 金基潤 陰城郡守 閔晉鎬 鎭川郡守 崔文煥 ?五郡守를 齊待本所?야 定巡檢成報告?야 促程發送이 在於同月十七日이온바 審辦之?未就決은 實難逆料이오되 各郡守之有何觀望?야 擧行府牒을 中間沮滯?고 終不就拏에 徒費時月이다이오니 事案?重과 訓意申明之地에 果如此漫?이면 事體乖損을 亦何不念이온지 務在質辦?야 就拏而遲延則已어니와 如果故意持難?야 ?不就待이면 其在道理에 寧非駭然乎잇가 最有所切迫憂悶者?니 各郡守之離官이 ?近二朔에 賦稅愆課와 民事積萃가 ?緣?曠?야 擧五郡境內에 爲弊爲?을 不可勝?이온즉 獄情이 非不緊重이오되 以一案刑事之遲留로 致底許多邑務之久曠이 大關民邑이온즉 特發訓平理院?와 ?行決案後 催還各該郡守?시여 ?差晩稅政과 滯久民事로 隨卽勘斷케?시옵고 且以押上諸民段도 見今農役이 方張?야 一刻爲急이오니 正犯以下該民等도 ?蒙疏放之地 恐未知何如이올지 玆에 ?實報告?오니 査照?시믈 要?올 事. / 忠情北道裁判所判事 李勝宇 法部大臣 閣下 大臣 協辦 光武八年七月二十八日 接受 光武八年 月 日 第 號(www.history.go.kr 2008)
김상일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평리원에서 충주군 김성업옥사와 관련한 군수 7명의 압송 보고 / 문서번호 報告書 第八十九號 / 발송일 光武八年八月三日(1904년 08월 03일) / 발송자 平理院檢事 洪鍾檍 / 접수일 接受 光武八年 月 日 第 號 / 수신자 法部大臣 朴齊純 閣下 / 결재자 大臣 協辦 / 承準部訓令忠州郡金聖業獄事四檢官及三査官押上之意 訓飭該道矣 就中槐山郡守 閔泳殷 延?郡守 李敏濟 報恩郡守 金基潤 陰城郡守 閔普鎬 鎭川郡守 崔文煥 現自該道押上 而淸風前郡守 金相一 行將拏致之際 該員自現就囚故 幷爲拘囚本院 忠州前郡守 鄭寅國 以公錢愆納事 業已拏囚故 玆報告 査照爲望. / 平理院檢事 洪鍾檍 法部大臣 朴齊純 閣下 大臣 協辦 光武八年八月三日 接受 光武八年 月 日 第 號(www.history.go.kr 2008)
김상일 [記事] : 각사등록 근대편/ 제목 평리원에서 김성업 옥사와 관련한 군수 7명 중 민진호․김상일․최문환의 석방을 청함/ 문서번호 報告書 第九十九號 / 발송일 光武八年八月三日(1904년 08월 03일) / 발송자 平理院檢事 洪鍾檍 / 접수일 接受 光武八年 月 日 第 號 / 수신자 法部大臣 朴齊純 閣下 / 결재자 大臣 協辦 / 被告 閔晉鎬 金相一 崔文煥案件審査 則忠州郡金聖業獄事 至於四檢 而前後檢官 皆以病患致死 懸錄實因 然被告等 俱以査官 査得其情節 且行?之 鄭成甫與諸證人 不下一杖 一一實招而承服故 皆以被?致死報因矣 今自本院審査之場 前後檢官之檢驗不實 諸被告之明執實因 訂於鄭犯之自服與衆證供 而明確無疑故 被告 閔晉鎬 金相一 崔文煥 幷行放免 玆報告 査照爲望. / 平理院檢事 洪鍾檍 法部大臣 朴齊純 閣下 大臣 協辦 光武八年八月三日 接受 光武八年 月 日 第 號(www.history.go.kr 2008)
김상일 [記事] : 한국독립운동사자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12(의병편Ⅴ) / 六. 隆熙 二年(一九○八․明治 四一) / (三) 十一月, 江原道 / 暴徒 歸順에 關한 件 / 기사제목 暴徒 歸順에 關한 件 / 발송자 江原道觀察使 李圭完 / 수신자 內部大臣 宋秉畯 閣下 / 발송일 隆熙 二年(明治 四一) 十一月 / 江原道觀察使 李圭完 內部大臣 宋秉畯 閣下 暴徒 歸順에 關한 件 蔚珍郡 西面 三斥洞 都砲將 金相一 當 三十二年 右는 客年 九月 十日 匪徒 首魁 鄭敬泰의 部下가 되어 蔚珍 三陟의 各郡을 都砲將으로 橫行하여 官憲에게 抗議하고 民財를 掠奪 또 蔚珍駐在의 日人巡査를 殺害코저 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爾來 山中에 隱匿하고 있었던 바 十月 三十日 歸順을 申出한 旨 蔚珍警察署長으로부터 報告가 있었던 바 其 犯罪事實의 詳細는 別紙 取調書와 如한바 免罪할 것인가 指示 있으시기 歸順者取扱心得 第五條에 依하여 玆에 上申한다. / 歸順匪徒 都砲將 金相一 取調書 昨年 九月 十日 匪魁 鄭敬泰 部下에 入參 都砲將하여 蔚珍邑 留宿 二日 後에 移向于 三陟郡 柯谷 山陽洞 等地하여 留屯 一朔之餘에 民財討索은 依鄭魁指揮하여 下卒輩에게 傳令而已요 無暇自往自討이며 同十月 十八日 夜에 蔚珍邑에 在한 日巡査를 暗害之意로 首魁 成益鉉 鄭敬泰 以下 頭領者 十餘名이 同上 元央峰頭타가 料外로 巡査便에서 先發砲聲이라 顚倒邱壑하여 逃却于無月洞타가 更聚南便松亭하고 餘卒은 四環其後하여 交戰 六時間에 乘間入邑하여 郡衙를 放燒하고 還去三陟郡柯谷等地하여 逗留二十日만에 沙谷洞에서 同 十一月 十六日에 日兵士를 遭遇하여 交應 四, 五時에 見敗逃歸하였다가 / 今年 四月 二十五日에 鄭魁에게 威脅而去하여 三陟郡 五十川 等地에서 暴行을 하다가 同 五月 二十五日에 與日兵士로 接戰하다가 自敗逃走하여 尙今 山峽에 隱避하였다.(www.history.go.kr 2008)
김상일 [記事] : 한국독립운동사자료/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12(의병편Ⅴ) / 六. 隆熙 二年(一九○八․明治 四一) / (三) 十一月, 江原道 / 內部大臣江原道觀察使 / 기사제목 內部大臣江原道觀察使 / 발송자 內部大臣 / 수신자 江原道觀察使 / 발송일 隆熙 二年(明治 四一) 十一月 / 內部大臣 江原道觀察使 앞 歸順 申請者 金相一은 許可하기 바란다.(www.history.go.kr 2008)
김상일 [記事] :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9)/ 불령단관계잡건-조선인의 부-재만주의 부(9) / 문서제목 [朝鮮獨立運動에 관한 情報의 건] / 문서번호 機密公信 제8호 / 발송자 諏訪光瓊(두도구분관주임) / 발송일 1919년 04월 04일 / 수신자 內田康哉(외무대신) / 수신일 1919년 04월 12일 / 색인어 이름 : 鈴木要太郞, 木島仙藏, 金相一, 李東輝, 金河秀, 盧永三, 金正龜, 張華日, 李昊龍, 趙仁興, 李時雨, 李同春, 白羽鶴, 李鎬班, 尹在鎬, 金元植, 張仁興, 金東瀅, 李雲一, 朴在榮, 朱漢明, 蔡鐘?, 洪濱, 廉在衡/ 단체 : 鄕議部, 龍井村基督敎會, 頭道溝商埠局, 敬信洋行/ 사건 : 延吉縣 尙義鄕 韓人의 自治團 鄕議部 組織, 鄕議部 傘下에 村議部 設置, 李東輝의 龍井村 基督敎會에 파리 到着 通知, 頭道溝分館의 金河秀 引致, 頭道溝 韓人의 獨立祝賀會 擧行, 니콜리스크 韓人의 獨立祝賀會 開催, 金東瀅의 財産賣却 後 歸國行, 頭道溝分館 內 密偵 四十名 風說/ 지명 : 頭道溝, 延吉縣 尙義鄕, 파리, 龍頭山, 五道溝, 四道溝, 虛來城, 二道溝, 延吉縣 藥水洞, 延吉縣 細鱗河, 南陽洞/ 기타 : 鄕議部規則, 密偵(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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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