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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을원242-5:이범익(1916.부임...1919.5.18.이후 이임)
작성자장병창 @ 2021.04.17 06:27:46

  예천고을원 242-5 : 이범익(1916부임-1919.5.18이후 이임) : 삼익수도 공적비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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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익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韓國․滿州人事交換政策에 의해 第2 / 년월일 1937-08-14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행정일반 > 공무원인사/ 출전 東亞日報 1937.8.13/ 내용 : 韓國․滿州人事交換政策에 의해 第2次로 前忠南知事 李範益이 滿洲國 國務院囑託으로 임명되다./ 東亞日報 1937.8.13(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李範益이 滿洲國 間島省長에 임명되 / 년월일 1937-11-01 / 주제분류 국제 > *만주국 > 정치행정 > 정치행정/ 출전 東亞日報 1937.11.2/ 내용 : 李範益이 滿洲國 間島省長에 임명되다./ 東亞日報 1937.11.2(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在滿 韓人들을 소위 생산력 증진의 / 년월일 1942-02-04 / 주제분류 해외한인 > 재만한인(관내포함) > 한인의 친일활동 > 친일활동/ 출전 每日新報 1942.2.6/ 내용 : 在滿 韓人들을 소위 생산력 증진의 勞力挺身隊로 동원하기 위한 명목으로 李範益(淸原範益)參議의 제의에 따라 1942年度 鮮系國民皆勞報國運動을 全滿洲의 韓人들을 대상으로 전개하기로 協和會상임중앙위원회에서 결의되다./ 每日新報 1942.2.6(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자료대한민국사/ 제목 전조선총독부 중추원부의장 박중양와 고문 한상룡 등이 면직 / 게재지명 매일신보 / 게재일자 1945년 09월 29일 / 날짜 1945년 09월 26일 / 내용 : 군정장관 아놀드소장으로부터 28日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9月 23日附로 前 朝鮮總督府中樞院副議長 朴重陽 同顧問 韓相龍 尹致昊 李範益 同勅任待遇 參議 金潤晶 外 5名이 罷免되었다. / 매일신보 1945년 09월 29일(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자료대한민국사/ 제목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當然犯․選擇犯을 특별검찰부로 송치 / 게재지명 경향신문 / 게재일자 1949년 07월 28일 / 날짜 1949년 07월 26일 / 내용 : 중앙특위에서는 그간 당연범(中樞院參議 襲爵者)․선택범(경찰) 등 수십 명을 소환하여 문초해 내려오던 중 우선 26일부로 일단 예비 조사를 마치고 일건서류와 함께 특검부로 다음과 같이 송치하였다 한다. / △당연범:宋文憲(道知事․參與官)․李丙周(男爵)․宋文華(중추원참의)․閔弘基(중추원참의)․崔益夏(참여관)․尹毅燮(侯爵)․李海昇(후작)․李範益(道警) / △선택범:許基燁․李炳烈․琴禮柱․鄭震基․全箕大․方奎煥․高鳳仁․林明? / 등 16명에 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속속 대거 송치되리라 하며 특히 약 4개월 전에 취조 도중 보석된 후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키고 있던 白樂承도 동일부로 송치되었다 한다. / 경향신문 1949년 07월 28일(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자료대한민국사/ 제목 반민족행위처벌법 공소시효 종료로 불기소 처분된 피의자 명단 / 게재지명 조선중앙일보 / 게재일자 1949년 09월 08일 / 날짜 1949년 08월 31일 / 내용 : 특위의 실질적인 사업은 지난 31일로 종지부를 찍었으며 아울러 特檢의 공소사무도 결말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31일 현재로 특위에서 특검으로 송치된 자의 총수는 159건이며 특위에서 발표된 31일 상오 현재의 기소자의 총수는 221건이었으며, 나머지 300여 명에 대한 기소 여부에 관해서는 일절 발표가 없었다. / 이에 관하여 지난 8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에 걸쳐 특검에서 처분한 불기소 처분상황을 보면 불과 나흘 동안에 기소유예가 張稷相 등 111건, 혐의없는 자 閔大植 등 34건, 기소중지가 崔錫鉉 등 52건으로 4일 간에 걸친 총 불기소처분건수만 하여도 197건에 달하고 있으며 특검에서는 이에 대한 상세한 발표를 특히 회피하고 있다. / 불기소 처분을 당한 197명의 성명은 다음과 같다. / ? 무혐의자:閔大植 元宜常 金承洙 采國赫 崔良金 金德三 李元九 洪陽明 柳時煥 李鍾淳 片德烈 金泰勳 金東 金泳煥 方奎煥 金龍根 任興淳 金有聲 李德杭 李恒植 李演 洪鍾大 元普善 李尙 曺奎洵 李宜鴻 宋秉憲(이상 34건) / ? 기소유예자:金漢昇 孫東夏 李基權 張明遠 李鄕雨 韓圭復 尹强老 盧泳煥 李熙迪 金虎未 金均熙 文鍾龜 車南鎭 崔乙成 金龍濟 元悳營 崔卓 金赫 片茂林 金相洪 閔丙億 閔泳瓚 趙龍鎬 張植 玄俊鎬 吳禮泳 金正大 趙?濟 李麟熙 申斗珠 柳龍 高卒富 車載貞 趙源興 金炳年 高雲德 洪淳索 姜世항 權相老 李載甲 申榮淳 方義錫 朴緖澤 辛泰獄 許智 韓駿海 禹夏榮 申鉉大 金正 高一晴 金斗河 李範益 尹赦燮 鄭震基 李丙周 宋文憲 琴永柱 林明洵 金箕大 李福成 全學日 高昌恒 金奎勉 李弼純 李明浩 裵永悳 金雨英 李昌根 尹泰彬 金基秀 許逸(외 2인) 朴富溫 金思演 李基방 金慶泰(외 1인) 成元慶 李英九 矢元 金元根 張綠葉 李影洙 崔昇? 吳誼寬 金八生 洪鍾轍 崔載瑞 張稷相 李宅柱 崔準集 金衡冀 李吉石 李鍾承(이상 111건) / ? 기소중지:朴禎緖 權寧薰 閔蘭基 洪海龍 崔煥東 林炳熙 金鳳生 李鍾燮 孫承億 姜濟鎬 金六關 金仁鳳 文憲造 洪性媛 李相禹 劉根洙 徐承烈 崔俊植 裵相기 李昌永 柳昌茂 李翰圭 梁連우 裵容杓 金孟鐵 尹章燮 柳志昌 金斗邑 姜洛中 張成船 趙熙彰(이상 52건) / 조선중앙일보 1949년 09월 08일(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서우 제14호 / 발행년월일 1908년 01월 01일 / 기사제목 時事日報 起十一月十六日 止十二月十五日 / 기사형태 소식 / 時事日報 起十一月十六日 止十二月十五日 (시사일보 기십일월십육일 지십이월십오일)/ ○ 東宮陪從 宮內府大臣 李允用 農商工部大臣 宋秉畯 陪從武官長 趙東潤 特進官 嚴柱益 詹事 高羲敬 陪從武官 金應善 宮內府秘書官 尹世用 修學院敎官 嚴柱日 農商工部秘書官 李範益 表勳院書記官 鄭東植 宮內府書記郞 高羲中 諸氏가 皇太子殿下 日本 留學往時 陪從을 被命?얏다더라.<40>(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기호흥학회월보 제1호 / 발행년월일 1908년 08월 25일 / 기사제목 本會記事 / 기사형태 소식 / 本會記事 (본회기사)/ ▲ 隆熙 二年二月 九日(日曜)下午一時에 定期總會를 ?洞普成專門學校內에 開?다. ▲ 金重煥氏의 特請으로 一月度會計檢定委員 二人을 選定?? 李春世 洪弼周 兩氏가 被任?다. ▲ 農商工部 書記官 李範益氏의 十? 寄附? 事를 會計가 報告?다. ▲ 細則起草委員 尹孝定氏의 改定? 原規則을 朗讀?니 錯誤가 無?으로 可納?다.<45>(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기호흥학회월보 제1호 / 발행년월일 1908년 08월 25일 / 기사제목 會計員 報告 / 기사형태 소식 / 會計員 報告 (회계원 보고)/ 李胤鍾 十圓 / 李範益 十圓 / 徐相浩 一圓 特別寄付金 一月條(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기호흥학회월보 제12호 / 발행년월일 1909년 07월 25일 / 기사제목 會中記事 / 기사형태 소식 / 會中記事 (회중기사)/ ○ 堤川郡支會 淸願書를 朗讀?니 勸諭委員 李春世氏의 報告가 確實無疑?니 依受認許?자? 李膺鐘氏 動議에 可決되다 ○ 四月度會計 檢定委員의 報告에 對?야 李膺鍾氏 動議로 依受?다 ○ 會計가 五月度會計帳簿를 報告?니 調査委員을 依規選定?? 李敏卿 金一善 李範益 三氏가 彼選?다 ○ 會長 金允植氏의 請願을 依受?기로 韓昌愚氏 動議에 可決?다 ○ 評議員 徐相浩氏의 學校建築事에 對? 議案을 李膺鍾氏 動議로 依受 採用?기로 可決?다 ○ 特別贊成會員 諸氏의 學校建築發起文을 公佈?다 ○ 會長을 薦定?? 評議會에셔 薦望? 李容稙 李重夏 李容元 三氏로 投票?야 李容稙氏가 被選?다<48>○ 總代四人選을 定?야 新舊會長에게 二人式 派送?기로 鄭永澤氏 特請에 異議가 無?야 南宮薰 李膺鍾 兩氏? 遞任會長 金允植氏에게 洪弼周 池錫永 兩氏? 新任會長 李容稙氏에게 派送?다 ○ 演士 柳一宣氏? 使命의 自覺으로 因起? 幸福的 主義라? 演題로 李膺鐘氏? 人類의 進化라란 演題로 演說?다.(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개벽 제42호 / 발행년월일 1923년 12월 01일 / 기사제목 嶺西八郡과 嶺東四郡 / 기사형태 소식 / 팔자조흔 郡守 供進會에 갓던 郡守 李明煥군은 참 八字도 좃타. 溫井里에 왓다는 소문을 들은지가 3, 4일이 되도록 郡에는 오지를 안이하야 여간 사람 안이고는 郡廳에서 郡守를 잘 볼 수 업다. 今番은 특히 民情視察官 李範益군이 왓스니까 上官接待하너라고 그러하지마는 郡事務도 좀 보와야 하지안나. 이왕 말이 낫스니까 말이지 視察官도 視察을 왓거던 民情視察을 잘 해야하지 溫井視察만 하면 職務을 다 한다할가 좀 注意들 하소.(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개벽 제56호 / 발행년월일 1925년 02월 01일 / 기사제목 流言蜚語 / 기사형태 잡저 / 流言蜚語 (류언비어)/ 宏壯한 歡迎會 / 이것은 조곰 묵은 일이다. 작년 歲末 소위 행정정리바람에 요행이 李軫鎬君이 학무국장이 되고

 

  李範益君이 내무부장이 되고 石鎭衡, 朴榮喆 兩君은 지사각하로 영전이 되얏는데 추세아부 잘하는 경성 내 有産, 有識의 某某 紳士들은 조선에 OO이나 되고 또 조선인이 무슨 갱생의 好運을 맛난듯이 喜氣滿滿하야 서로 쫏차 단이며 치하도 하고 환영회를 食道園 내에 개최하얏는데 (韓相龍 등 발기로) 참가자가 무려 100여인에 달하야 공전의 대성황을 이루웟다. 그런데 그 환영회는 성황이어니와 主客間에 서로 밧고 주고한 소위 축사와 감상담 중에는 별별의 奇談이 더욱 만핫다 한다. / 벽두에 조선일보 사장 李商在 노인은 발기인측을 대표하야 氏의 독특한 괘사를 피워가며 「오날 이 좌석은 감시한 좌석이니」 또 「학무국장과 지방장관은 책임이 중대하니 諸君이 직무에 특별 신중이 하라」는 둥 「조선인도 今後부터 前途에 광명이 잇다」는 등 축사 겸 훈사 비슷한 요령부득의 말을 하고 其次에 李軫鎬君은 자기가 一 총리대신이나<46> 한 듯시 「자기는 官界를 단념하 國고 江湖에 間養하럇더니 의외에 大命을 拜受하야 학무국장의 영광되는 지위를 엇게 되니 天恩의 망극은 물론이어니와 이것은 다만 자기 1인의 광영이 안이라 일반 조선인의 광영이라」 云云하고 그 뒤를 니여 韓相龍君의 비서(?) 梁在昶君이 水口門 구멍만한 들창코를 벌눙벌눙 하면서 某某人을 지정하야 감상담 시작을 하게 되는데 더욱 腰折할 말이 만핫겟다. 첫재에 칠면조 참여관으로 명성이 藉藉하다가 一躍하야 충남 신지사가 된(도청이 공주이닛가 孔雀은 딀 듯」 石鎭衡君이 쑥 나오더니 자기 이력서 낭독회인 줄 알엇던지 자기이력을 한참 말한 뒤에 韓相龍君의 송덕문을 또 해설하고는 자기가 금번에 충남 170만 인민 (실지 인구는 116만 미만)을 맛게 되얏스니 책임이 중대하다 云云하고 그 다음 황해도 내무부장 李範益君은 또 말하되 「日韓병합은 日韓 兩 민족의 행복을 위함에 불구하고 병합 이후 조선인을 고관에 등용치 안이하야 兩 민족간 허다의 層折이 만핫더니 今般 정무총감의 大英斷으로 행정을 정리하고 조선인을 학무국장 혹은 내무부장까지 임용하게 되얏스니 인제는 국가 백년대계가 확립되얏다 운운하고 꾀만코 행세 잘 하기로 유명한 尹致昊 얊?반은 「자기가 이럴 줄 알엿더면 출석쳐 안이 하엿겟다」고 하엿단다. 아- 참 굉장하고 갸륵들 하다.<47>(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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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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