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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42-6 : 이범익(1916부임-1919.5.18이후 이임) : 삼익수도 공적비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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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삼천리 제5권 제9호 / 발행년월일 1933년 09월 01일 / 기사제목 朝鮮人 道知事 人物觀 / 필자 心耕生 심경생 / 기사형태 논설 / 朝鮮人 道知事 人物觀 (조선인 도지사 인물관)/ 心耕生 / 慶北道知事 金瑞圭氏, 江原道知事 李範益氏, 忠北道知事 南宮營氏, 全北道知事 高元勳氏, 黃海道知事 鄭僑源氏 / 江原道知事 李範益氏 : 明治16년 11월 14일 忠淸北道 丹陽郡에 출생하여 (금년 51세) 明治363년 거금 30년 전에 外國語學校 敎官으로 被任한 것이 氏의 官界生活의 스타-트엿다, 그 후 陸軍通譯官으로 明治37,8년 日露戰役에 從軍하야 明治40년에 此大戰役의 유공자로서 賞勳局에서 상금 8,000원을 바덧다 한다, 이어 度支部技師로 잇다가 얼마 후에 韓國 皇太子께옵서 日本에 御留學하옵시자 陪從의 光榮을 입엇스며 귀국하야 農商工部 秘書官 及 內部 秘書官을 역임하엿다. / 大局의 변동을 따라 大正元年에 朝鮮總督府 郡守(春川郡 在勤)으로 被任되어 達城, 醴泉, 金山(現 金泉), 漆谷(現 慶南 咸安附近)等地를 경유하야 大正10년 2월 總督府 事務官으로 內務局 在勤이 되엿섯다. / 다시 黃海道 內務部長을 지나 昭和2년 6월 2일 慶尙南道 參與官으로 被任하야 昭和4년 11월 28일 江原道知事 昇任으로 2등2급이 되엇다. / 氏가 부임한지는 於焉 4년, 그 공적은 무엇일고. / 소화6년 關東, 關北一帶에 잇섯든 未曾有의 大水害와 東海岸 海嘯로 數百生靈이 수장되고 피난, 遊離民이 수를 헤일 수 업스매 道長官으로서 草履감발하고 자신이 各處의 이재민을 慰問하엿다는 것만은 政治民衆化의 理想一端의 표현이라 할는지? / 山村僻地, 교통 불편한 江原道에서 모든 시설이 不備하고 현대문명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江原道로서 知事行政이 곤란할 것도 업지 안을 것이다. 貧窮民과 火田民이 이가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서 春窮期의 식량결핍의 빈농 수 83,143戶를 엇지 구제할 것이며 關東의 행정이라 李知事의 메스는 장차 얼마마한 수술을 할 것이며 학교시설, 문맹퇴치 등 그 장래에 氏의 수완을 엿볼 재료가 만히 남을 줄 안다.(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삼천리 제7권 제1호 / 발행년월일 1935년 01월 01일 / 기사제목 三千里機密室 The Korean Black chamber / 기사형태 소식 / 朝鮮人의 高官들 / 總督政廳 아래에 朝鮮人 관리로써 高官에 잇는 이는 누구 누구인가. 이것을 성명별로 보면 總督府 내에는 學務局 사회과장 嚴昌變씨가 잇고, 中樞院 내에 부의장 朴泳孝侯와 ?議 及 書記官 金大羽씨가 잇고, 각 道 地方廳에 京畿道에 산업부장 겸 ?與官에 金東勳씨가 잇고, 忠北에 知事 南宮營, ?與官 安鍾哲의 兩씨가 잇고, 忠南에 ?與官 朱榮煥, 內務部長 尹泰彬의 兩씨가 잇고, 全北에 知事로 高元勳, ?與官 李鍾殷의 兩씨가 잇고, 全北에 산업부장 겸 參與官 姜弼成씨가 잇고, 慶北에 知事에 金瑞圭, ?與官 及 산업부장에 金時權의 兩씨가 잇고, 慶南에 ?與官 겸 산업부장에 孫文*씨가 잇고, 黃海道에 知事 鄭僑源, ?與官 張錫元의 兩씨가 잇고, 平南에 ?與官 兪萬兼씨가 잇고, 平北에 ?與官 崔志煥씨가 잇고, 江原道에 知事 李範益, ?與官 洪鍾國의 兩씨가 잇고, 咸南에 ?與官 金泰錫가 잇고, 咸北에 ?與官 李聖根씨가 잇다. 府尹으로는 開城 府尹으로 李基*씨가 잇고 그 밧게 府理事官으로 京城府에 사회과장 李源甫씨가 잇다.<24>(www.history.go.kr 2008)
이범익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삼천리 제10권 제10호 / 발행년월일 1938년 10월 01일 / 기사제목 間島에 와서 / 필자 間島省張 李範益 간도성장 이범익 / 기사형태 논설 / 間島에 와서 (간도에 와서)/ 間島省張 李範益 / 我 만주국은 건국 후 근 7년을 경과하였으나 국가 만반의 제도가 대개 정비되고 문화적 시설 交是其而目을 일신하여<166> 내정은 더욱 신장하고 국력은 더욱 충실되여 건국의 근본 이념인 왕도 낙토의 건국과 민족 協和의 이념이 착착 실현 진전되여 客年 臘月에는 盟邦의 치법권의 전면적 철폐와 함께 열국의 정식 승인이 있어 國礎는 逐日 *고를 가하야 日滿 一德一心 공존 공영의 實을 擧함과 동시에 일방으로는 日滿獨伊의 방공 樞輔의 중요 지위를 담임하야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과에 공헌하고 있는 일은 실로 경하하지 아니치 못하는 바입니다. / 도리켜 우리 間島省의 정세를 대관하면 其 면적은 20,000,000 리에 불과하고 인구는 아직 700,000 이 넘지 못하는 省이기는 하나 其 위치 즉 동은 소련과 경계를 접하고 남은 일* 帶水를 격하야 조선과 상대하여 있어서 現下의 정세에 鑑하야 지리상, 사상상 又는 군사상 극히 樞要한 역할을 負荷하고 있읍니다. /
또한 교통상 경제상에 볼 것 같으면 조선의 소위 北鮮 3港과 연락하고 있고 京圖線 及 *佳線이 어느 것이나 我我 圖們을 기점으로 성내를 관통하고 있음으로 日滿 교통의 最捷 경로를 형성하고 있읍니다. 특히 최근 제창되고 있는 일본해의 호수화 문제가 近近 실현되는 때에는 日滿 간의 교통은 시간적으로도 극도로 단축되여 따라서 日滿 양국의 산업상 중요한 지위를 점령하게 되리라고 생각함니다. / 이것을 최근 日滿 무역의 추세에서 보면 圖們을 통과하는 수출입 무역액이 逐年 비약적 발전을 하고있어 금후 배후지인 東北滿 일대의 자원의 개발과 相侯하야 內鮮滿을 통하는 경제적 대동맥이 되여 日滿 교통상 경제상으로 其 약진할 것은 용이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니다. 유래 當省의 역사를 삺어 보면 滿鮮간에 극히 錯綜한 조치 못한 事象 없지 못하였음니다. 만주 건국 이래 과거의 경쟁선이였든 豆滿江은 이제 滿鮮간을 一如로 하는 친선 하천으로 化하야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실로 환희하야 마지안는 바입니다. 當省의 인구 중 약 8할 즉 500,000 인이 조선인으로서 민족적으로는 타지방과 상이한 실정에 있는 것이나 施政의 要諦인 민족 協和는 多斯한 특이한 지방에 있어서 절실히 통감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我 건국 후 특히 작년 支那 사변을 계기로 부지불식간에 滿鮮 양 민족은 相 신뢰, 相 제휴하야 외부에서의 사변이 내부에서의 약속으로 되는 동시에 銃後의 열성을 披瀝하야 和哀 협동한다고 하는 아름다운 정경이 전개된 것은 吾等의 가장 감격하고 있는 바로서 금후일지라도 조곰도 흔들님이 없는 민족 協和를 완성할 것을 日夜 염원하야 其 구현에 관민 일치 노력하고 있는 바입니다. 當省은 5縣과 51街村에 구분되어 있는데 이 街村 행정은 종래 日本人民會 朝鮮人民會 혹은 商埠局 등 민족적으로 분립되였든 각 기관을 일원화할 필요를 통감하야 康德<167> 3년 8월 省令으로써 他省에 솔선하야 街村 제도를 실시한 것인데 다행히 의외의 好 결과를 齎來하야 특히 작년 일본 제국의 大乘的 호의에 의한 치외법권 철폐와 동시에 중앙 정부에서 街村 제도의 제정에 伴하야 더욱 그 기초가 법적으로 확릊?되였음으로 금후 일층 명랑한 발전이 약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임니다. /
當 지방은 건국 전후를 통하야 혹은 공산당의 跳梁 혹은 不逞 분자의 跋邑 혹은 反滿抗日의 비적의 출몰 등에 의하야 양민을 괴롭게 한 일이 비일비재하였읍니다. 그런데 大同 원년 조선군의 출동을 위시하여 爾來 일본의 주둔 수비대 ? 滿軍 及 日滿 양 경찰의 쉬지 안는 대 토벌 及 귀순 공작 등에 의하야 차등 비적은 其 근거지를 완전히 복멸되여 이와 相 호응하야 도시에 피난하였든 선량한 농민을 原地에 복귀케 함과 동시에 자위적 조직에 의한 집단 부락을 결성케 하야 日滿 군경 及 성현의 지도하에서 부락 자체의 경비와 奧地 치안 유지의 일조케 하였음으로 이제 본 성내에는 산간에서 不偶 생활에 궁핍한 소수의 토비가 식량을 약탈하고 있는 것 뿐으로 관내 극히 안온하야 이것을 건국 당초에 비교하면 전혀 격세의 감을 呈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산업 방면에 있어서는 농가가 총 호수의 8할을 점령하고 있고 경작 면적 280,000 町步고 畑作을 주로하고 있는데 逐年 水田 경작지 격증을 보는 데 닐으게 되였음니다. 그러고 관내에는 상당 대면적의 未墾地가 개척의 손을 기다리고 있음으로 목하 국책으로 今次 계획 하에 이민 사업을 실행 중에 있음니다. 본성에 있어서도 일즉 농촌 진흥 계획을 수립하고 착착 실행 중에 있었는데 중앙 정부의 산업 5개년 계획은 여기 박차를 가하여 예정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음니다.
특히 수출품의 대종인 대두는 年 産額 약 700,000 석에 달하는 것인데 康德 2년 이래 품종의 개량 ? 格付 검사를 실행한 결과 금일에는 일본 각지의 取引에서 間島 대두는 비상한 聲價를 놉히고 있음으로 此에 의한 농민의이익은 적지 않음니다. / 그런데 종래와 같은 粗策的 경영법으로는 到底 시세의 진전에 卽應할 수 없는 것은 물론임으로 금후는 할 ?? 있는대로 집단적 다각형적인 영농법에 衣케 하려는 일 방법으로 먼저 각 농가로 유축 농가가 되게 하려는 필요상 본년부터 상당 대규모의 축산 장려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니다. 이것이 실현되는 때에는 실시 중의 자작농 創定과 相侯하야 건실한 농촌의 출현을 보게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바임니다. / 又 당 성 동북부 及 서부 지방에는 材積수 5억 석이라고 하는 삼림이 밀생하여 있어 康德 3년에 삼림 철도가 부설되여 현재 착착 벌채 반출되고 있는데 중앙부 及 남부의 無立木 지방에는 본년도부터 식목을 장려하게 되였음니다. / 又 광산 자원에 있어서는 성내 도처에 금 及 석탄 등의 중요 광물이 외량으로 매장되여 있고 특히 동 오이루셀안치모니와 같은<168> 특수 광물이 발견되였음으로 금후 교통의 완비 확보에 伴하야 그 장래성을 크게 기대하고 있는 바임니다. / 공업 방면에 있어서는 풍부한 재목 석탄을 이용하야 빨푸를 제조하는 2大 공장이 현재 설치되여 있는데 공업 용수로 가장 적당 且 풍부한 豆滿江의 하수는 손을 벌리고 공업적 이용자의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음으로 천연 자원의 개발과 相侯하야 1大 공업 지대가 출현할 것도 갓가운 장래에 있다고 信하고 있음니다. / 성내에서 교육 상황을 보면 국민의 기초인 초등학교가 공사립 합하야 280校 그 재학 아동 수 약 40,000 인으로서 추정 학령 아동의 약 4할 5분이 취학하고 있음니다. 그 중 종래 만주국 측에서 시설한 초등 又는 중등학교에는 滿鮮인 共學이 다수하야 여기 소국민의 민족 協和의 꽃이 피고 있음니다. 치안의 확보와 농가 경제력의 進과의 衣하야 자제 교육의 향학열이 현저히 왕성하게 되였음으로 금후 교육 기관이 확장과 함께 其 내용을 충실케 하야 다음 시대를 背負하고 건실한 국민의 양성에 노력하려고 목하 계획 중임니다. /
특히 재학 아동 수는 7할 5분 즉 30,000 인이 조선인으로서 此等 아동에 대하여서는 일본 제국 국민으로서의 소질 향상을 도모함과 동시에 만주 제국의 선량한 구성 분자가 되게 하야 양국 一德一心의 實을 擧하려고 其 정신적 도야에 대하야는 격단의 유의를 拂하고 있음니다. / 특히 중등 교육 방면에는 멀니 조선 내에서 입학 희망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일은 극히 자미있는 현상으로 이것은 만주국의 약진을 말하는 한 證左이라고 볼 수가 있음니다. / 또한 최근 성내에 儒敎가 현저히 진흥하고 있는 일은 극히 깃버할 현상으로서 충효인의로써 교육 정치의 기조로 한 我 만주국에 其 연원인 공자의 敎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의 활동은 왕도 정치의 진전과 동양 도덕의 부흥에 공헌하는 바 多大할 것을 기대하고 있음니다. 과거에 있어 政民國 시대의 策과 批政과의 아래서는 각 민족 간에 분쟁 찰*이 닐어난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서 특히 我 間島省에서는 가장 심한 바이였으나 건국 후 日滿 불가분의 굳은 서약이 된 후 이래 민족이 相親 共榮의 자연한 현상에 도라가 이기심의 억제와 隣保 相愛의 至情을 유감없이 발휘하야 다만 道義 국가 건설의 이상 指成에 躍勇 매진하고 있는 실상을 목격하는 일은 실로 흔쾌하야 마지않는 바입니다. 특히 現下 四圍의 정세는 오히려 일층 其 필요를 통감하는 실정에 노여있음으로 성내의 관민 일동은 모다 한 덩어리가 되여 조고마한 間隙이 없이 불안도 닐으카지 않고 確呼한 신념하에 잘 시국을 인식하야 銃後의 임무를 다하야 「이상의 실현은 間島에서」라는 못토로 일보 일보 전진을 계속하고 있음니다.<169>(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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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