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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44-1 : 김병태(1921.6.13임명-1924이임) : 예천읍내 연못을 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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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金秉泰)는 1921년에 권태소 군수 후임으로 부임하여 1924년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도속에서 예천 군수로 부임하여 예천읍 못을 매립하여 시가지 발전에 새 역사를 창조하였다.
당시 예천읍은 오늘과 같은 편편한 좋은 장소가 아니고, 삼익수도에서 효자로 양편에만 집이 들어섰고, 경찰서 문 앞까지 예천초등학교 부지 일대가 연못이었고, 남쪽도 서본리 굴모리에서 안동통로까지 거의 다 못이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양쪽 못에서 연꽃이 만발하여 유명하였다. 이 못을 김병태 군수 노력으로 매립하게 되었으니 삼익수도를 정비한 이범익 군수와 더불어 예천의 역사에 길이 빛날 일들이다.
한편 예천시장 터가 매립지에 마련된 것을 기념하는 공진회를 개최하였고, 1923년에는 영주군 상리면과 하리면을 편입시켜 예천군은 12개 면이 되었다. 또 1922년 2월 15일에는 사설 대창학원이 예천향교에서 문을 열었다.
김 군수는 칠곡 군수로 전임되었고, 뒷날 개성 부윤과 전북 도지사를 지냈다.
김병태가 예천고을 원으로 있을 무렵인 1921년 8월 12일에 예천소년회가 조직되었고, 11월 2일에 경성지방법원에서 조선총독부 판사 영도웅장이 이르기를, 채기중은 장승원을 살해한 후 1917년 10월 중 다른 몇 명과 함께 지보면 지보리의 한문교사 조용필 집에서 경고문이라는 문서를 광복회 경북지회 도협만 명의로 작성했는데, 그것에는 광복회의 목적을 싣고, 또한 군자금을 내라, 응하지 않거나 돈 낼 기한을 넘길 때는 군률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뜻으로 썼다라고 하였다. <張炳昌 論說委員>(醴泉新聞 2006년 03월 16일)
김병태(金秉泰) : 1921년에 부임, 1924년에 이임한 예천 군수이다. 본관은 김해이다. 도속(道屬)에서 예천 군수로 부임하여 예천읍의 못을 매립하여 시가지 발전에 새 역사를 창조하였다. 당시 예천읍은 오늘과 같은 편편한 좋은 장소가 아니고, 삼익수도(三益수道)에서 영주통로 양편에만 집이 들어섰고, 경찰서 문 앞까지 예천초등학교 교지(校地) 일대가 연못이었고, 남쪽도 서본리 굴모리에서 안동통로까지 거의 다 못이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양쪽 못에서 연꽃이 만발하여 유명하였다. 이 못을 김병태 군수 노력으로 매립하게 되었으니 삼익수도를 정비한 이범익(李範益) 군수와 더불어 예천의 역사에 길이 빛날 이들이다. 한편 예천시장 터가 매릅지에 마련된 것을 기념하는 공진회(共進會)를 개최하였고, 1923년에는 영주군 상리면과 하리면을 편입시켜 예천군은 12개 면이 되었다. 또 1922년 2월 15일에는 사설 대창학원(私設大昌學院)이 예천향교에서 문을 열었다. 칠곡 군수로 전임되었고, 뒷날 개성 부윤과 전북 도지사를 지냈다.(松臺 創刊號 1972)
김병태(金秉泰) : 예천 군수이다. 총독부 관리, 출신지․학력 및 1910년 전의 경력은 알 수 없으며, 군 서기를 하다가 1916년 도 서기로 승진했다. 1921년 경상북도 예천 군수, 1924년 칠곡 군수를 거쳐 1927년에 도 이사관으로 경상북도 내무부 산업과장 겸 상품진열소장에 보임되었다. 1930년 4월에 다시 상주 군수로 나갔다가, 같은 해 10월 개성 부윤에 임명되었다. 그 뒤 1937년에는 고등관 3등 평안남도 참여관으로 평안남도 산업부장을 지냈다. 이 때 관례에 의해서 평안남도 미곡통제조합연합회 회장, 평안남도농회 회장, 평안남도 방공위원회 위원, 평안남도 임금위원회 위원 등 각종 직무를 겸하였다. 1939년에 황해도 지사가 되었는데, 재직 중 1941년 3월 만주국 훈4등 경운장(景雲章)을, 같은해 6월에는 만주국 대전기념장(大典記念章)을 받았다. 1942년 전라북도지사가 된 뒤 1943년에 퇴관하였다.(總督府官報, 林鍾國(韓國學中央硏究院))
김병태 [記事] : [서명]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1922년도/ 同 1923년도/ 同 1924년도/ [기사명] 金秉泰 / (郡守) | 지방관서>경상북도>부군도(府郡島)>예천군/ [기관명] 국사편찬위원회(韓國歷史情報統合시스탬 2006)
김병태 [記事] : 한국사데이타베이스 > 형태별> 편년자료>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6권 > 1921년 6월 13일 > 李宜豊을 信川郡守, 朴性宙를 金川/ 년월일 1921-06-13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행정일반 > 공무원인사/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21.6.18/ 내용 : 李宜豊을 信川郡守, 朴性宙를 金川郡守, 沈相國을 松禾郡守, 朴正純을 載寧郡守, 金鍾奭을 鳳山郡守, 李承九를 長淵郡守, 梁元鐸을 新溪郡守, 權重明을 安岳郡守, 金秉泰를 醴泉郡守, 劉壎燮을 甕津郡守, 崔台鉉을 平山郡守, 李成鎬를 谷山郡守에 임명하다./ 朝鮮總督府官報 1921.6.18(www.history.go.kr 2007)
김병태 [記事] :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思想에 關한 情報綴(1)
사상에 관한 정보철(1) / 문서제목 日支衝突事件에 관한 管內狀況(第十一報) / 문서번호 京高秘 제8402호의 10 / 발송자 京畿道 / 발송일 1931년 10월 02일 / 수신자 京城地方法院 檢事正 / 수신일 1931년 10월 03일 / 색인어 이름 : 林日?, 邱世忠, 王嗣訓, 張學良, 구즈네프, 有賀光豊, 中野太三郞, 森悟一奇, 榮久太郞, 谷多喜?, 釘本藤次郞, 成松綠, 大和興次郞, 池田長次郞, 韓相龍, 前田?, 都筑實, 齋藤久太郞, 分島周次郞, 金秉泰, 林漢瑄, 朴鳳鎭, 朴基源, 水野憲, 高田信一, 松浦郞, 李浩鎭/ 단체 : 甲子俱樂部, 元山領事館, 京城總領事館, 朝鮮銀行, 中華商會, 金融組合, 國際聯盟, 京城駐在 蘇聯領事館, 京城製菓會社, 朝鮮日日新聞社, 龍山步兵 第七十八聯隊/ 사건 : 滿洲事變, 甲子俱樂部 주최 全鮮時局大會, 甲子俱樂部 委員總會/ 지명 : 振威, 松炭, 西井里, 安仲市場, 楊平, 平壤, 滿洲, 홍콩, 沿海州, 鳥致院, 新義州, 開城, 奉天(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국내외 항일운동 문서/ 문서철명 滿蒙 各地에서의 鮮人의 農業關係 雜件(5) / 문서제목 吉林省公署 特派駐延辦事處의 集團部落 計劃에 관한 件 2 / 문서번호 機密 제340호 / 발송자 永井淸(間島總領事) / 발송일 1934년 04월 24일 / 수신자 菱刈隆(滿洲國特命全權大使) / 색인어 이름 : 金秉泰(辦事處事務官), 吉村(辦事處事務官), 林屬(朝鮮總督府派遣員), 加藤(延吉憲兵隊長), 西永(副官), 加藤(憲兵分隊長), 藤本(步兵第10聯隊), 赤司(局子街分館警察署長), 齋藤例三郞(特務機關延吉支部長代理)/ 단체 : 治安維持會, 吉林省公署, 自衛團/ 사건 : 打合會 開催, 滿洲軍 集團部落 建設援助, 自衛團 訓練, 集團部落建設 打合事項/ 지명 : 局子街, 延吉縣 三道灣, 石人溝, 和龍縣 漁節村, 泉水洞, 百日坪, 上百日坪, 汪淸縣 大荒溝子, 北大洞, 永別?子, ?枝溝, 琿春縣 二道河子, 依里哈達, 葫芦別, 西北溝, 滿洲國/ 기타 : 集團部落 建設費/ 첨부자료 集團部落建設 打合事項(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李宜豊을 信川郡守, 朴性宙를 金川 / 년월일 1921-06-13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행정일반 > 공무원인사/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21.6.18/ 내용 : 李宜豊을 信川郡守, 朴性宙를 金川郡守, 沈相國을 松禾郡守, 朴正純을 載寧郡守, 金鍾奭을 鳳山郡守, 李承九를 長淵郡守, 梁元鐸을 新溪郡守, 權重明을 安岳郡守, 金秉泰를 醴泉郡守, 劉壎燮을 甕津郡守, 崔台鉉을 平山郡守, 李成鎬를 谷山郡守에 임명하다./ 朝鮮總督府官報 1921.6.18(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金秉泰 黃英秀 金秉旭 金圭年 柳時 / 년월일 1930-04-04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군수/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30.4.11/ 내용 : 金秉泰 黃英秀 金秉旭 金圭年 柳時台가 郡守에 任命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30.4.11(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金秉泰 金秉旭이 尙州 및 奉化郡守 / 년월일 1930-04-05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군수/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30.4.11/ 내용 : 金秉泰 金秉旭이 尙州 및 奉化郡守에 任命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30.4.11(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金秉泰가 開城府尹에 任命되다. / 년월일 1930-10-01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부윤/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30.10.7/ 내용 : 金秉泰가 開城府尹에 任命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30.10.7(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金秉泰가 總督府事務官에 任命되다. / 년월일 1933-04-07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행정일반 > 공무원인사/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33.4.12/ 내용 : 金秉泰가 總督府 事務官에 任命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33.4.12(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金秉泰가 平南道參與官에 임명되고 / 년월일 1937-10-27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중앙행정,관서 > 중추원/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참여관/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37.11.1/ 내용 : 金秉泰가 平南道參與官에 임명되고 朱榮煥이 中樞院參議(奏任官)에 위촉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37.11.1(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平南道 參與官 金秉泰가 黃海道知事 / 년월일 1939-12-27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도지사/ 출전 東亞日報 1939.12.27/ 내용 : 平南道 參與官 金秉泰가 黃海道 知事에 임명되다./ 東亞日報 1939.12.27(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道事務官 金秉泰가 黃海道知事에 임 / 년월일 1939-12-28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도지사/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40.1.11/ 내용 : 道事務官 金秉泰가 黃海道知事에 임명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40.1.11(www.history.go.kr 2008)
김병태 [記事] :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별건곤 제34호 / 발행년월일 1930년 11월 01일 / 기사제목 新裝한 舊都 開城行進曲(地方紹介...其三) / 기사형태 잡저 / 三. 開城은 재내실업가대 실업가의 금융거래에 잇서서 독특한 방법이 잇다. 그의 利殖方法이 月利와 日步와는 그 형식이 전연 달은 것으로서 舊曆 2월 7월을 결산기로 하고 혹 5일 혹 6일 혹 7일 내지 8일을 수시 일단기로 하야 독특한 利式制定이 잇나니 그가 곳 時邊이라 칭하는 자라, 貨借 兩等의 사이에 중개인이 잇서 이를 매개하며 그는 전부가 신용거래로서 하등의 담보가 업다. 그럼으로 불행히 차용자가 실패하는 境過에는 貨額은전부 손실하기 쉬운 것이다. 그리하야 貨主는 금전을 대부할 때마다 차용인의 신용여하를 여간 주의하는 것이 안이다. 그런데 금년 7월의 결산기에는 幾多의 파산자를 보게 되야 時邊去來上에 일대 공황을 招致하게 되얏스니 그 결과로 開城상계의 금융회전이 絶對敏活치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불시에 來襲한 幾多의 불행한 사정은 상업을 주로 하얏던 開城에 일대 불안정을 야기한 바 兼하야 불행한 시기에 불행히 현실된 開城府制實施는 더욱더 開城人의 장래를 일층 곤경에 빠지게 하고 말지 안을넌지? 때맛참 10월 1일 저들의 축배를 날니는 시정기념일 開城이 공교로이도 그 부제실시를 보게 됨은 이 또한 무슨 XX가 잠재하야 잇는 듯-文化政治를 표방하는 齋藤總督의 재임벽두 菩薩心特志로 임명하신 조선인 초대 府尹 金秉泰氏는 開廳式場에서 부담증가는 절대로 업스리라는 것을 언명하얏다. 新府尹의 언명한 바 부담증가의 絶無는 엇더한 복안이 잇슴인지. / 상수도의 신설 市區의 개정 도로의 확장 이 모든 府로서의 요할 시설은 모도 開城新府民의 窮囊으로 지출하여야 할 것이니 이에 반하야 府民으로의 모든 부담의 증가는 필연불가피할 것으로서 갓득이 곤경에서 신음하는 吾府民의게 얼마만한 고통을 줄 것이랴?(以下略-원문)(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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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