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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고을원 245-2 : 송문헌(1924.12부임-1929이임) : 예천형평사 사건이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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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헌 [記事] : 친일파관련문헌/ 親日派群像 / 三. 各種 團體 及 團體 共同行動의 部① / 國民情神總動員 江原聯盟 結成式 / 江原道에서는 국민정신총동원 강원연맹 결성식을 1938년(昭和 13년) 7월 7일 江原道廳에서 거행하였는데 총재 金時權, 간사 金永近 李季祿 李鳳業, 평의원 元從三 李瑾洙 金光鎬, 고문 宋文憲(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반민특위조사기록/ 이름 김원근 / 문서명 피의자신문조서(제4회) / 작성일 단기 4282년[1949] 5월 18일 / 피의자신문조서(제4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피의자 김원근 / 右 반민법 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4282년[1949] 5월 18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忠北調査部 서기 김영창[金榮昌]을 입회시키고, 前回에 계속하여 피의자의 신문함이 如左함. / 문 그 해에 元山에서 大成中學校 설립 계획을 한 일이 있었는가? / 답 원래 본인의 교육사업이 積置한 재산의 일부를 할양하여 함이 아니고 實弟 영근[永根]이가 함남 원산에 있어 동해안 생산 어물의 總都賣商을 경영하여 실권을 장악하였던 관계로 상당한 수입이 있었으나 본인의 實弟 영근은 극히 質素儉約하여 一足의 고무신이라도 열 번 지어 신는 위인입니다. 그러면서도 수입의 餘金은 반드시 형인 본인에게 보내어 교육사업에 쓰게 합니다. 그 사정을 안 원산 유지들이 찾아와서 돈은 함경도에서 모아, 쓰기는 충북에서만 하니 유감이라 함경도에서도 교육사업을 일으켜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아우 영근이가 와서 저의 別途 저축한 것이 토지가 課稅 가격으로 20여만 円, 현금이 30만円 있으니 원산에 中學을 설치하자는 의견입니다. 그 별도 적립을 알지 못하였던 본인은 깜짝 놀라 즉시 그 사업 추진을 승낙하고 일부 유지에게 意思를 전하였더니 함경도에서는 대찬성을 하였으나 총독부 당국에서 全鮮 13 항구에 鮮人 中學을 설치한 전례가 없으니 실업학교를 건설하라는 권고였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初志는 그것이 아니었으므로 거절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원산에 독일인이 경영하던 樓氏女子高等學校가 있었는데 본국에서의 송금 두절로 부득이 폐쇄케 되었으므로 그와 회의 종합 경영하여 남녀중학을 설치키로 운동하였던바 역시 奏效치 못하고 있던 차, 마침 元山農業學校가 공립으로 승격하면서 경비가 부족하니 前記 60만円을 농업학교에 기부하여 달라고 함경 내 摠都長이던 송문헌[宋文憲]씨가 來訪하여 요청하였었으나 그 亦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가 해방이 되자 즉시 인가를 얻어 「원산대성중학교」라는 명칭으로 출발하였었는데, 지금은 「元山人民大成中學校」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반민특위조사기록/ 이름 김원근 / 문서명 피의자신문조서(제5회) / 작성일 단기 4282년[1949] 5월 19일 / 피의자신문조서(제5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피의자 김원근 / 右 반민법 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4282년[1949] 5월 19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忠北調査部 서기 김영창[金榮昌]을 입회시키고 前回에 계속하여 피의자의 신문함이 如左함. / 문 비행기를 헌납한 일이 있다는데? / 답 충북에서는 道 전체에서 비행기 헌납설이 나자 각 호별세 등급에 의하여 6,000여 円 낸 일이 일차 있었으나 직접 비행기를 헌납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 관련된 일이 1건 있었습니다. 내용인 즉 敵政 소화 18년[1943]에 實弟 영근[永根]이가 기거하고 있던 咸南 元山에서도 비행기 헌납 강요가 심하였을 때입니다. 하루는 每日新報를 보니 淸州 김원근이가 함남 원산에서 비행기 헌납금으로 5만원을 헌납하였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놀라 어찌된 사유를 영근에게 편지로 물었더니 答에 曰 내용이 복잡하니 서면으로 못하겠고, 면대하여 상세 告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수개월이 경과한 후에 영근이가 왔기로 자세한 사정을 물으니 먼저 大成中學을 설립하려던 60만円 까닭에 함경 내무부장 송문헌[宋文憲]이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元山府廳에서와 경찰서에서 자꾸 호출하여 비행기 2대를 헌납하라 하는 것을 거절하여 그네들에게 반감을 산 일과 侄兒 준덕[俊德](당 27세)이가 일본음악학교 재학 중이었으며, 본인의 양자 준철[俊哲](당 26세)이가 明治大學 專門部에 재학 중이었으나 학병을 기피하였다는 과실로 인하여 당국의 견해는 학교 기부 거절, 비행기 헌납 거절, 학병 기피 등 3건 공히 전쟁 비협력자이며 日帝 배격자라고 간주하여 본인을 체포하고 侄兒 형제를 구속한다고 협박 공갈하는 바람에 형의 일신을 염려하는 아우의 심정으로 원산부청으로 자진하여 비행기 헌납금으로 37,000원을 납부한 즉, 경찰서장과 상의한 부윤 말이 금액이 부족하다고 증액할 것을 권하였더랍니다. 물론 본의는 아니나 후환을 염려하여 당시 부진한 상업 수입으로는 어찌 할 수 없고, 정기예금통장 13,000円을 가지고 가서 추가한 즉, 율림[栗林] 某라는 日人이 5만円 내어 金 87,000원으로 비행기 1대를 헌납하였으니 정기예금 13,000원은 당분간 불필요하니 次致에 헌납하라 하고 반환하더랍니다. 그런 경위로 비행기 헌납 운운의 설이 있었지 그 후는 一分도 헌납한 일이 없습니다.(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반민특위조사기록/ 이름 김원근 / 문서명 진정서 / 수신자 反民特委 忠北支部長 / 작성자 淸州商科大學 학생회장淸州商科大學 학생회 부회장淸州商科大學 학생회 부회장金昌圭申鳳秀鄭文燮 / 진정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日警은 이를 빙자하여 비행기 헌납을 강요하다. 이밖에 원산에 설립하려던 大成中學의 기본재산 60만원을 元山公立農業學校에 기부를 강요(당시 함남 내무부장 송문헌[宋文憲] 일부러 淸州까지 출장하여 원근씨에게 이를 강요하였다)하였으나 원근씨 강경히 이를 거절하였으므로 반감을 일으킨 송문헌은 원산에 歸廳하여 日警과 협력하여 원근씨를 체포하려 하였다.(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반민특위조사기록/ 이름 성원경 / 문서명 피의자신문조서 / 작성일 단기 4282년[1949] 8월 17일 / 피의자신문조서 반민족행위특별검찰부 / 피의자 성원경[成元慶] / 右者에 대한 반민족행위 처벌법 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단기 4282년[1949] 8월 17일 특별검찰부에서 / 특별검찰관 이의식[李義植] / 서기관 신현수[申鉉秀] / 列席하고 특별검찰관은 피의자에게 대하여 신문하기를 如左히 함. / 문 然이면 그 당시 지사는 누구였으며 그 실정을 잘 아는 사람이 있는가. / 답 당시 지사는 송문헌[宋文憲], 박재홍[朴在弘] 2대에 걸쳐 온 일이며 그 사실은 현석호[玄錫虎], 심의룡[沈宜龍], 유광준[兪光濬], 임종섭[林鍾燮] 등이 잘 알고 있습니다.(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京城法學專門學校 敎授 金命洙가 海 / 년월일 1923-03-30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행정일반 > 공무원인사/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지방행정,관서 > 군수/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23.4.5/ 내용 : 京城法學專門學校 敎授 金命洙가 海州地方法院 判事, 郡守 金奉斗가 全羅北道 理事官, 道警部 蔡奎丙․全昌林가 道警視, 金正基가 錦山郡守, 郡屬 李完稙이 鎭海郡守, 郡屬 朱英煥이 抱川郡守, 道屬 金玉鉉이 陰城郡守, 郡屬 金在皓가 報恩郡守, 道屬 金振璿이 唐津郡守, 郡屬 李萬用이 禮山郡守, 郡屬 金宇鎭이 靑陽郡守, 府屬 洪祐崇이 牙山郡守, 道屬 金榮濟가 光陽郡守, 郡屬 南廷學이 長城郡守, 郡屬 金永近이 康津郡守, 道屬 金東坤이 求禮郡守, 府屬 崔鳳基가 慈城郡守, 道屬 蔡麟이 平昌郡守, 道屬 李選鎬가 利原郡守, 郡屬 朴承珉이 三水郡守, 道屬 金商契가 鍾城郡守, 府屬 宋文憲이 靑松郡守, 道屬 洪淳頊이 坡州郡守, 道屬 黃潤東이 長湍郡守, 郡屬 全興文이 廣州郡守, 府屬 任洪淳이 山淸郡守, 道屬 崔斗淵이 宜寧郡守, 郡屬 鄭東一이 淮陽郡守, 道屬 李炳千이 伊川郡守, 郡屬 李大容이 蔚珍郡守, 郡屬 兪燁이 豊山郡守, 郡守 申鉉泰가 驪州郡守, 郡守 徐廷岳이 龍仁郡守, 郡守 崔益夏가 振威郡守, 郡守 康元達이 富川郡守, 郡守 金鴻圭가 鎭川郡守, 郡守 崔志煥이 永同郡守, 郡守 金鎔濟가 槐山郡守, 郡守 李敬植이 忠州郡守, 郡守 姜大喆이 保寧郡守, 郡守 李敏寧이 洪城郡守, 郡守 元殷常이 瑞山郡守, 郡守 尹求가 天安郡守, 郡守 金基泓이 金堤郡守, 郡守 李東漢이 南原郡守, 郡守 李基枋이 任實郡守, 郡守 張基昌이 麗水郡守, 郡守 權賢燮이 海南郡守, 郡守 安鍾哲이 羅州郡守, 郡守 朴勝源이 長興郡守, 郡守 成禎洙가 珍島郡守, 郡守 曹正煥이 慶山郡守, 郡守 金翰植이 東萊郡守, 郡守 元勛常이 泗川郡守, 郡守 李鳳和가 咸陽郡守, 郡守 閔麟鎬가 密陽郡守, 郡守 李炳冽이 鐵山郡守, 郡守 石明瑄이 橫城郡守, 郡守 李起遠이 楊口郡守, 郡守 李敬善이 新興郡守, 郡守 河泰瑞가 端川郡守, 郡守 鄭?이 德原郡守, 郡守 伊南喆이 定平郡守, 郡守 李興載가 富寧郡守, 郡守 金正奎가 穩城郡守, 郡守 金振玟이 慶源郡守에 임명되다./ 朝鮮總督府官報 1923.4.5(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제목 國民精神總動員 江原道聯盟이 江原道 / 년월일 1938-07-07 / 주제분류 정치,행정 > 정치,행정(조선총독부) > 전시통제조직,정책 > 국민정신총동원연맹/ 출전 民族政經文化硏究所編 親日派群像/ 내용 : 國民精神總動員 江原道聯盟이 江原道廳에서 결성된 바, 總裁에 金時權, 幹事에 金永近․李季祿․李鳳業, 評議員에 元從三․李瑾洙․金光鎬, 顧問에 宋文憲이 선출되다./ 民族政經文化硏究所編 親日派群像(www.history.go.kr 2008)
송문헌 [記事] : 자료대한민국사/ 제목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當然犯․選擇犯을 특별검찰부로 송치 / 게재지명 경향신문 / 게재일자 1949년 07월 28일 / 날짜 1949년 07월 26일 / 내용 : 중앙특위에서는 그간 당연범(中樞院參議 襲爵者)․선택범(경찰) 등 수십 명을 소환하여 문초해 내려오던 중 우선 26일부로 일단 예비 조사를 마치고 일건서류와 함께 특검부로 다음과 같이 송치하였다 한다. / △당연범:宋文憲(道知事․參與官)․李丙周(男爵)․宋文華(중추원참의)․閔弘基(중추원참의)․崔益夏(참여관)․尹毅燮(侯爵)․李海昇(후작)․李範益(道警) / △선택범:許基燁․李炳烈․琴禮柱․鄭震基․全箕大․方奎煥․高鳳仁․林明? / 등 16명에 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속속 대거 송치되리라 하며 특히 약 4개월 전에 취조 도중 보석된 후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키고 있던 白樂承도 동일부로 송치되었다 한다. / 경향신문 1949년 07월 28일
송문헌 [記事] : 자료대한민국사/ 제목 반민족행위처벌법 공소시효 종료로 불기소 처분된 피의자 명단 / 게재지명 조선중앙일보 / 게재일자 1949년 09월 08일 / 날짜 1949년 08월 31일 / 내용 : 특위의 실질적인 사업은 지난 31일로 종지부를 찍었으며 아울러 特檢의 공소사무도 결말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31일 현재로 특위에서 특검으로 송치된 자의 총수는 159건이며 특위에서 발표된 31일 상오 현재의 기소자의 총수는 221건이었으며, 나머지 300여 명에 대한 기소 여부에 관해서는 일절 발표가 없었다. / 이에 관하여 지난 8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에 걸쳐 특검에서 처분한 불기소 처분상황을 보면 불과 나흘 동안에 기소유예가 張稷相 등 111건, 혐의없는 자 閔大植 등 34건, 기소중지가 崔錫鉉 등 52건으로 4일 간에 걸친 총 불기소처분건수만 하여도 197건에 달하고 있으며 특검에서는 이에 대한 상세한 발표를 특히 회피하고 있다. / 불기소 처분을 당한 197명의 성명은 다음과 같다. / ? 무혐의자:閔大植 元宜常 金承洙 采國赫 崔良金 金德三 李元九 洪陽明 柳時煥 李鍾淳 片德烈 金泰勳 金東 金泳煥 方奎煥 金龍根 任興淳 金有聲 李德杭 李恒植 李演 洪鍾大 元普善 李尙 曺奎洵 李宜鴻 宋秉憲(이상 34건) / ? 기소유예자:金漢昇 孫東夏 李基權 張明遠 李鄕雨 韓圭復 尹强老 盧泳煥 李熙迪 金虎未 金均熙 文鍾龜 車南鎭 崔乙成 金龍濟 元悳營 崔卓 金赫 片茂林 金相洪 閔丙億 閔泳瓚 趙龍鎬 張植 玄俊鎬 吳禮泳 金正大 趙?濟 李麟熙 申斗珠 柳龍 高卒富 車載貞 趙源興 金炳年 高雲德 洪淳索 姜世항 權相老 李載甲 申榮淳 方義錫 朴緖澤 辛泰獄 許智 韓駿海 禹夏榮 申鉉大 金正 高一晴 金斗河 李範益 尹赦燮 鄭震基 李丙周 宋文憲 琴永柱 林明洵 金箕大 李福成 全學日 高昌恒 金奎勉 李弼純 李明浩 裵永悳 金雨英 李昌根 尹泰彬 金基秀 許逸(외 2인) 朴富溫 金思演 李基방 金慶泰(외 1인) 成元慶 李英九 矢元 金元根 張綠葉 李影洙 崔昇? 吳誼寬 金八生 洪鍾轍 崔載瑞 張稷相 李宅柱 崔準集 金衡冀 李吉石 李鍾承(이상 111건) / ? 기소중지:朴禎緖 權寧薰 閔蘭基 洪海龍 崔煥東 林炳熙 金鳳生 李鍾燮 孫承億 姜濟鎬 金六關 金仁鳳 文憲造 洪性媛 李相禹 劉根洙 徐承烈 崔俊植 裵相기 李昌永 柳昌茂 李翰圭 梁連우 裵容杓 金孟鐵 尹章燮 柳志昌 金斗邑 姜洛中 張成船 趙熙彰(이상 52건) / 조선중앙일보 1949년 09월 08일(www.history.go.k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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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