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게시판
이곳에 올려진 내용은 예천군청과는 무관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고, 본 게시판을 이용해 게시자가 허위 과장광고나 사기성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으니 사용자께서는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 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고을원 250-4 : 박용익(1943.2.28 부임-1945.10.13 이임) : 자유당 국회의원까지 이름
----
박용익(朴容益) : 일본식 이름: 美村文雄,/ 1905년 1월 8일 ~ 1977년 4월 6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제3,4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공화국 말기에 집권당인 자유당의 원내총무를 맡았다. 4·19 혁명 성공 후 3·15 부정선거에 관여한 혐의로 입건되었으며,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나 혁명재판소가 구성되었다. 박용익은 혁명재판을 받고 거액의 불법 선거 자금을 조달한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았다.[1] 민족문제연구소가 2008년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다./ 약력 :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졸업, 경상북도 봉화군ㆍ예천군 군수, 경상북도 상공국장, 대한임업개발주식회사 사장, 경상북도목재주식회사 사장, 중앙산림조합연합회 이사, 자유당 원내총무, 국회 예산결산위원장/ 참고자료 박용익 - 대한민국헌정회, 윤광원. “3·15부정선거와 금융계의 수난 (하) - 선거자금 약속해야 대출, 20%선 상납.”, 《주간경기》, 2006년 12월 26일 작성. 2008년 3월 18일 확인/ 주석 :↑ “무더기 求刑이 내려지던 날 - 울고웃는 喜悲의 交錯.”, 《경향신문》, 1961년 9월 12일 작성, pp. 2면. 2008년 3월 18일/ (강릉군 을)박용익 제4대 국회의원(명주군),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자유당/ 1905년 태어남 | 1977년 죽음 | 일제 강점기의 관료 |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 강원도 출신자 | 서울대학교 동문 | 경기고등학교 동문(daum 2010)
박용익 : 한자 朴容益, 영어 공식명칭 Park Young Ik, 영어 음역 Park Yongik,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성씨·인물/근현대인물/ 유형 인물/근현대인물/ 지역 강원도 강릉시, 시대 현대/현대, 성격 정치인, 출신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덕실리 233번지, 성별 남, 생년 1905년, 몰년 1977년, 본관 강릉, 대표경력 자유당 원내총무/3·4대 국회의원, [정의] 현대의 정치인/ [개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 시절 국회의원과 그에 따른 요직을 두루 거친 정치인이다./ [학력] 성균관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경력] 봉화(奉化)·예천(醴泉) 군수와 경상북도 상공국장(商工局長)을 역임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하여 3·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대한임산개발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1954년 5월 20일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강원도 제10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62.1% 득표로 당선되었고, 1958년 5월 2일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강원도 제18선거구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활동사항] 국회의원 재식시에는 국회운영위원장과 자유당 원내총무 등의 요직을 거쳤다. 4·19의거 당시 자유당 중진의원으로서 자유당 총위원장직에 있었는데 쿠데타 세력에 의해 규탄되어 구속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강점기에는 행정 관료로 해방 정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던 정치가로 2005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사 명단 중 고등문관 이상 관료에 포함된 인물이다. 지역의 유력 인사였지만 근현대사 굴절의 역사 과정에서 지탄받는 부분도 함께 지닌 인물이다./ [참고문헌] 『강릉시사(江陵市史)』(강릉문화원, 1996)(daum 2010)
박용익 : 월간낚시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가지로 종합해야 한다는 ‘종합선거법’의 제정이 논란거리였는데,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가 당시 자유당의 박용익(朴容益) 총무에게 의중을 물었더니 말끝을 흐리면서 이미 낚시복장(?)을 갖추고 있던 이 부의장과 함께 뺑소니를 쳤다는.../ http://fishing.chosun.com(daum 2010)
박용익 : 金東祚회고록 秘話 내가겪은 한국외교 (9)/ ...보내준 덕분에 화진포로 가서 이기붕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강원도 출신의 자유당 중진의원인 박용익(朴容益) 씨 등 여러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이씨에게 “허정 씨를 수석대표로 지명하려는데 어떠냐”고 물으니 “유태하로는.../ http://unsuk.kyunghee.ac.kr(daum 2010)
박용익 : 일석 이희승 전집 7/ e-Book/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7.03.13/ 책본문 : ...무전 여행치고는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강릉과 경주에서는 동급생 박용익(朴容益), 김영준(金英俊) 군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고, 삼척에선 연희 전문 수물과(數物科).../ 347페이지(daum 2010)
본 공공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